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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y 09. 2024

달은 자기 궤도로 간다

달은 인생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달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다. 달은 자신의 모습을 고정된 상태로 두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달은 보름달로 차오르고 나면 다시 초승달로 기운다. 성장이 끝나면 쇠퇴한다. 쇠퇴하고 나면 다시 생성이 시작된다. 인생도 비슷한다. 성장할 때가 있고 쇠퇴할 때가 있으며 차오를 때가 있고 빠져나갈 때가 있다. 거머쥘 때가 있고 다시 놓아줄 때가 있다. 희로애락이 있으며 이것이 반복된다.


달은 외로워 보인다. 밤하늘에 수많은 행성이 떠있지만 달은 유독 혼자 있는 것 같다.  짙은 어둠 속에서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때문일까? 어쩌면 외로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 홀로 있을 수 있는 고독함일 수도 있겠다. 이 어둠을 감당하는 강인함 일 수도 있겠다. 이런 능력이 있기에 보름달은 어두울수록 빛을 내는 신비한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보름달이 뜰 때면 소원을 비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보름달에게 자신의 소망을 투사하는 것이다. 

 



<내 인생책 표지 디자인> 2018년 / <대체 무슨 달> 2019년


나를 표현하는 상징물로 달이 여러 번 등장했다. 내가 그린 달에도 삶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희망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이상을 투사했다. 달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이상이었다. 현실의 내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달은 너무나 멀리 있기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희망했기에 절망했다. 내가 희망하지 않는 여기의 삶은 가짜라고 생각했다. 거기 저기에 진짜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다.  


달이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달을 품고 사회에서 부여한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달을 여러 번 그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 달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도,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추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과 이상은 이분법으로 갈리는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달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내 현실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달을 품고 현실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일들이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들을 더 많이 자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갈등과 난관을 만났고 무기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마다 현실과 이상을 의심했다. 잘 가고 있는 걸까? 이 방향이 맡는 걸까? 다른 길이 또 있는 걸까? 덜 고민한 것 아닐까? 혹은 삶의 변화가 정말 가능한 걸까?


나는 달에게서 한 가지 속성을 놓치고 있었다. 바로 달의 궤도이다. 달은 자기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궤도를 계속 돈다. 달은 자기 길을 간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구름에 가려 보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돈다. 


나는 달이 되지 못했다. 난 여전히 달을 보는 구경꾼이었던 것이다. 그저 달을 보며 잘 돌고 있는지 의심하고 모양과 빛깔은 어떤지 평가하는 구경꾼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달이 되고 싶다. 지지 않는 달이 되고 싶다. 묵묵히 갈길을 가는 달이 되고 싶다. 


<그저 간다>, 20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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