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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Nov 19. 2024

사랑은 계속된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스톡홀름을 위하여)>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스톡홀름을 위하여)>, 1992 (송은 미술관, 2024 설치)


창문 앞에 전구가 빛나고 있다. 얼핏 실내 장식물인가 하고 지나칠 수 있겠지만 이것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1996)의 <스톡홀름을 위하여>라는 작품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오랜 파트너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 1959-1991) 사망 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쿠바 출신의 이민자였으며 동성애자였다. 그는 미국에서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수성을 숨기거나 그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 오히려 드러내어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사랑, 죽음, 애도,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지극 사적 주제를 다루었다. 그런 소수자의 사적 사랑이 공적인 미술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이별했지만 전구가 계속 바뀌어 끼워지는 한 영원한 빛을 발하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한 것이다.



(좌) 벨기에 브뤼셀 현대예술센터, 2010년 설치  (우) 서울 리움 미술관 2012년 설치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재단


<스톡홀름을 위하여>는 전시에 따라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보통 개념미술 작품에는 설치 방식에 대한 작가의 지침 또는 설계도가 따르기 마련인데 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작품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다. "어떻게 설치할지는 원하는 대로 정해주세요. (...)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고, 즐기고, 제 창의성에  의문을 제기하세요. 애지중지 다루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메시지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전시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공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형되길 바랐다. 작품의 의도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생산되길 의도했던 것이다. 작품은 전시 방식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기보다는 전시되는 공간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으로 존재하길 바랐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다양한 공간 속에서 새롭게 재생된다.


이들 사랑의 빛은 서정적인 촛불도, 황홀경을 주는 스테인드 글라스도 아닌 일반 전구이다. 이런 전구는 상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판매를 늘리고자 하는 마케팅 방법에서 시작된 것이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불빛이 아닌 자본의 산물인 흔한 공산품을 매체로 사용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구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평범한 전구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흔하디 흔한 전구를 교체할 수만 있다면 끝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했다. 그렇다. 사랑의 조건은 전구가 아니다. 전구의 교체에 있다. 불이 꺼진 전구를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사랑은 불이 켜진 전구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사랑은 소유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지속해서 원하는가이다. 내가 사랑을 지속해서 원할 때 그것은 꺼지지 않는 빛이 된다. 사랑은 계속된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서울 송은미술관 2024년 설치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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