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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Jul 12. 2023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 그리고 나의 진화

철학수업 후기: 앙리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10주 동안의 <창조적 진화> 강독수업이 끝났다. 여전히 낯설고 달그락거린다. 충격적이고 놀랍다. 머리로도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과 몸으로는 언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성적으로나마 좀 더 가까이 가 보고자 수업 내용을 내 언어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것 역시 내 안에 들인, 내 프레임으로 본, 내가 수용가능 한 범위 안에서의 편협한 이해겠지만 말이다. 나로 분산된 사유의 조각이 철학자의 큰 그림을 직관하여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우선 시작해 본다.


#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무한히 창조하면서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오랜 물음이다.

베르그손은 이 질문을 다르게 묻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탐구하는 것은 단지 <존재한다>는 말에 대해 우리 의식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의식적 존재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며, 성숙한다는 것은 자신을 무한히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창조적 진화』 P. 30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매 순간 변화 속에 있다. 어제와 같은 나는 없다. 어제와 기분도 다르고, 몸의 상태 또한 다르다. 외부 환경 계속 변화하므로 그것에 놓인 나의 상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린 왜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왜 내 삶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지각이 사물을 고정시켜 놓고 보기 때문이다. 강물은 실제 흘러가는 물이지만, 강물을 찍은 사진을 보고는 강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처럼 강물의 흐름도, 사람의 변화도 고정시켜 놓고 보고 되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기 쉽다. 변화한다는 것은 세상의 고정되지 않고 무한한 흐름으로 흐르는 것이다. 무한한 파동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결과가 아닌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변화는 과정이다.


우리의 지각은 한계가 있다. 흘러가는 것을, 흔들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적외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바위는 바람과 파도에 깎여 모래가 되어 가지만 인간의 지각은 바위의 변화를 지각하지 못한다. 인간의 지각은 한정적인 것 밖에 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각한 것을 고정시켜 놓으려는 습성이 있다. 인간이 변화의 연속적인 과정을 고정시키는 것은 불안을 다루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데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각의 범위가 한정되었고, 한정되게 지각된 결과를 해석하려 하는 지성적 존재로 진화했다. 그러기에 매 순간의 변화를 지성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베르그손은 우리의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 동물로 진화하기 이전, 식물과 동물로 분기하기 이전, 세포 동물이기 이전, 유생물과 무생물이 되기 그 이전, 에너지로 가득한 세상까지 그 기원을 찾아간다. 베르그손에게 진화란 수백만 개체들을 매개로 "분기하고 갈라지는 노선"에 있으며 그 노선 역시 무한히 계속 갈라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한다. 나란 사람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무수히 많이 갈라진 가지 끝에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가지는 잇따라 자라나는 연속선상의 있다. 그 가지에는 나의 삶뿐 아니라 나의 조상님의 조상님의 조상님, 그 이전의 동식물, 그 이전에 아메바 그 이전의 태고적의 자연까지 내 의식(정신,기억)에 들어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에 대해 베르그손은 생명이 있는 것에는 "시간이 기입된 장부"가 열려 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오랜 생명의 기억은 잠재적 상태에 있다. 발현된 것만 현재의 나로 형태 짓는다. 발현되지 않은 기억은 없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지 않은 잠재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얼은 땅처럼,  발화되기 전 씨앗처럼, 깨어나기 전의 알처럼, 나비로 변태 되기 전의 번데기의 상태처럼, 아무런 가구도 없지만 빛으로 가득 찬 방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인간의 지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무언가로 가득 차 있고, 존재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이다.  다만 생명은 더 많은 행동을 통해 기억이 잠재되어 있는 곳에 "잠겨진 고정쇠"를 풀어 버리고 "의식을 더 자유롭게 통과"하게 됨으로써 그 잠재성이 발현된다. 그것은 내게 좀 더 "유용성"이 있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발현된다.

    

잠재된 기억(정신)의 재생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행해질 수 있다. 자신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지성’을 멀리 해야 한다. 여기서 지성은 안전하지만 굳은 것, 인위적인 통일성, 정지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성은 안정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안정은 고정되어야지만 유지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잠재성을 일깨우는 일은 위험하다. 익숙한 환경, 안정된 환경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불안을 감수 한하고 의식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과거의 기억은 몸을 통해 재생되어 과거의 기억, 혹은 잠재된 감수성을 깨울 있다. 나를 매혹시키는 타자, 심장이 떨리게 하는 타자는 나의 잠재된 기억을 깨워준다. 그렇게 일깨워진 기억은 같은 기억을 반복하게 하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를 준다. 한번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있다. 그가 같은 구덩이에 반복해서 빠지더라도 계속 성찰한다면,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다는 강한 욕구를 품는다면. 어느 날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억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갇혀 있는 의식이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행동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다세포 동물에서 어떤 것은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어떤 것은 인간이 되었을까? 그것은 '보고자 하는 욕망'으로 설명한다. 앞을 보고자 하는 의식이 행동을 통해 정신을 해방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보고자 하는 생명은 자신의 몸을 이끌어 벽을 부딪혀 나가면서 세계를 탐색해 나간다. 어떤 생명은 더듬이가 새겨나고 어떤 생명은 시신경이 생겨난다. 더 많은 의식을 가질수록, 더 많이 활동하고 되고 이러한 활동성은 더 많은 변화를 만들게 된다. 다세포 동물이 생명을 확장시켜나가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질 때 '인간'으로 진화하는 시간을 거치게 된다. 이 시간은 '지속'의 시간에서 가능하다. '지속'은 강력한 욕구를 가진 시간이며, 욕구를 품고 행동한 시간이며, 곧 진화의 시간이다.

 

생명은 변화한다. 그러나 흔히 변화란 무언가 형태가 바뀌었을 때만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변화한 그 순간을 고정시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그 과정 자체가 변화이다. 변화의 과정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무언가를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것, 내 삶을 이끌어 간 것, 내 삶이 오늘에 이르게 한 그것을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눠지고 갈라지는 것이다. 세포가 분열하여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상상해 보자. 아기는 엄마에게 덧붙여진 상태로 자라나지 않는다. 아기는 엄마와 갈라지면서 태어난다. 생명의 분할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나눠진 상태로, 그 자체의 생명으로 개체화되어 가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나눠지는 일이다. 나눠지며 퍼지는 일이다. 사랑도 지식도 일도 인간의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떨구며 퍼뜨리고 확산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과정이 계속 잇따르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과정의 연속성이다"






# 나의 진화의 역사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변화’는 언제 이루어졌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왔는가? 과연 그것이 성숙이었을까? 혹은 퇴행이었을까? 성숙의 과정에 있었다면 무엇을 창조했을까?  <창조적 진화>의 내용을 내 삶에서 찾고 싶어 졌다. 내 삶의 '변화'를 인식하고 싶어 졌다.


의식은 창조의 요구이기 때문에 창조가 가능한 곳에서만 스스로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이 자동성을 강요받을 때 의식은 잠들게 된다. 의식은 선택의 가능성이 다시 나타나자마자 깨어난다.  -『창조적 진화』 P. 389

   

나는 언제 창조의 요구를 받았을까? 그리고 그런 창조의 요구를 받을 때 내 지각은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 빛과 소리도 지각하려 할 때 드러나듯이 지각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창조의 요구를 받게 된다. 내가 지속의 시간을 보냈을 때를 떠올려 보자. 그것이 기쁨의 지속이던 슬픔이 지속이었던 나는 무언가 의지를 가지고 나아갔을 것이다. 내 지각이 좀 더 많이 확장되었을 때, 혹은 자극에 어떤 방향으로 반응했는지 살펴보자. 이 작업을 통해 내가 반응하고 있는 방향, 나의 진화의 방향, 나의 의식의 방향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난 자연과 가까웠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구름이 되어 보기도 했고, 등 뒤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느끼며 그 열기에 녹기도 했으며, 무더운 여름날 얼음 하나를 삼키며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린 시절 기억은 그저 분위기로 기억된다. 대기의 온도, 냄새, 빛깔 그리고 웅웅 거리는 소리로 기억된다. 그 시절 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인지와 사회성 발달로 지성이 커짐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섞여 놀기 바빴고 공부하기 바빴다. 그리고 활자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독서실 휴게실에 비치된 신문을 읽고 동네 도서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다 봤다. 그리고는 읽은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재미있는 거리를 읽고 상상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은 그 시절의 재미였다. 난 소설 '작은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가 되고 싶었다. 그 시절 난 이야기에 대한 감수성이 확장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에 가서도 더 열심히 놀았다. 친구들도 다양하게 사귀었다. 많은 갈등 속으로 들어갔고 많이 싸우고 상처도 받았다. 이 시절 내가 배운 것은 자유와 역량이었다. 난 자유로운 '조'가 되고 싶었다.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으로 바다에 몸을 던졌지만 물만 먹고는 좌초했다. 그 이후 바다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바다를 상징하는 자유와 모험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난 보다 안전한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다. 자유를 향한 감수성이 줄어들고 안전해지고 싶은 열망이 강해지는 시기였다. 사회의 질서로 편입되고 싶어 졌다.


취직을 하려 했다. IMF여파로 취직은 어려웠다. 취업준비를 하며 학원비를 벌기 위해 통신사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다.  내 업무는 신규가입이나 통신장애 접수처리를 하는 일이었다. 아침 7시에 시작된 첫 전화에서 고객님은 숫자욕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무실을 나왔다.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 어느 날이었다. 난 성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던 소녀는 그때 내 마음속에서 죽었다.  난 타인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름있는 직장을 다니고 돈도 많이 버는 알아주는 전문직이 되고 싶었다. 내게는 명예라는 옷이 필요했다.


IT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과제를 했고 신뢰를 형성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회사의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힘과 명예가 생겼다. 나를 깎듯이 대했고, 함부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회에서의 성취는 나의 갑옷이 되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의 성취는 욕먹기 싫은 마음이 만든 것에 불과했다. 비난받기 싫어서 만든 갑옷일 뿐이었다. 난 갑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생물로 진화했다. 난 이 무거운 갑옷을 벗은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갑옷이 두꺼워질수록 간절해졌다.  


르네 마그리트 < The large Family>, 1963, 100 X 81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진짜 나를 찾겠노라 외치며 퇴사를 했다. 몇 개월 휴식하고 나니 더는 할 게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1년은 영어 공부와 각종 자격증 준비를 하며 다시 나를 독촉하는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독서를 시작했다. 독서를 하면서 또 기억을 일으켰다. 난 어린 시절 미술을 좋아했었다. 얼마 후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다녔고 미술관 도슨트가 되었다. 책을 읽고 미술을 공부하고 내가 공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좋았다. 난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갑옷을 벗은 후 맨 살로 세상을 부딪혀 나가면서 잊었던 감각을 다시 살려내게 되었다. 그리고 더 예민한 감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친밀한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일로 난 고통이 무엇인지, 신체에 각인된 기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잘 돌보지 못해  떠난 인연들이 있다. 돌아오지 못할 세계로 떠나가기도 했으며, 오해의 골짜기에 갇히기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밤마다 슬픔이 짐승처럼 찾아왔다. 그리움에 가슴이 멍들었다. 이러한 많은 상실은 내게 슬픔의 감수성을 알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에도 알 수 없었던, 어느 책이나 영화로도 알 수 없었던, 오직 삶을 살아야지만 알 수 있는 사건들이 나의 통각을 깨우며 슬픔의 감수성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 주었다. 슬픔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지속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슬픔의 시간들은 세상의 아픔을 더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내게 상처 준 이의 아픔까지도 헤아려보려 했으니 말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주변에 아이들만 보였다. 옆집 아이도 보이고 동네 아이도 보였다. 그 아이들이 모두 예뻐 보였다. 누군가의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마음이 아팠다. TV에 나오는 이름 모를 아이가 울면 마음이 같이 힘들어졌다. 마치 세상 모든 아이가 내 아이인 것만 같았다. 세상의 부모가 내 마음인 것만 같았다. 사랑의 감수성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미술치료사로 일한다. 그곳에서 일상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이들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발달이 지연된 아동, 삶의 무게에 눌린 어른들도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타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과 슬픔의 감수성이 커지지 않았다면 이들과의 만남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참 많았다. 이 일은 나의 세계가 좁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좁아터진 내 세상을 좀 더 확장시키고 싶어졌다.


철학을 공부한다. 철학은 ‘마음’에 대한 학문이었다. 마음은 본성, 정신을 뜻한다. 철학은 나의 마음, 너의 마음, 그리고 모든 생물의 마음, 그리고 우주의 마음을 보려한다.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향하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 철학은 차갑다. 날카롭고 아프다. 덧칠한 아름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모순을 받아들인 채로 삶을 사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우아하다. 난 이런 우아함에 끌린다. 나의 허물을 마주 보고 벗겨 내고 싶다. 삶의 고통을 담담히 담아낼 만큼 단단해지고 싶다. 나의 미숙함을 드러냄으로써 성숙해지고 싶다. 아는 만큼 삶으로 살아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우아함이다. 


난 계속 변화하고 있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상실이 있었지만 나아갔다.  앞이 보이지 않아 벽에 머리를 처박으면서도 나는 보기 위해, 더 넓은 지각을 갖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자각하는 감수성을 갖기 위해 다가갔다. 때론 멈추기도 뒷걸음 치기도 했지만 난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성숙은, 진화는 상처받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여전히 모호함이 두렵고 불안에 흔들리는 날이 있지만 최대한 정직한 자리에 서 보겠다. 오늘도 한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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