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해설 수업 후기 (3)
다시 쓰는 시간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를 다른 관계에서도 되풀이한다. 부모에게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었던 사람은 그것을 타인에게서 얻기 위해 애쓰고, 부모를 절대자로 여긴 사람은 그를 닮고 따르는 방식으로 사랑하려 한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부모가 강한 통제욕은 가진 경우라면 자식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는 방식으로 사랑받으려 한다.
친구와 사랑의 양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부모로부터 느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다고 말했다. 내가 무얼 해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내게 직접적인 애정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랑을 믿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리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대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가 나를 믿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말해왔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아껴주셨지만 동시에 의심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고 의심했고,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는 타락할 거라고 걱정하며 나를 단속했다. 아버지의 불신은 나에 대한 것 보다도 세상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세상이 문제라고 하거나 사회구조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딸을 통제함으로써 지키고자 했다. 자식을 위험에 한 세상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사랑의 방법이라고 믿으셨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세상이 비록 위험하더라도, 그 위험한 세상 속에서 신나고 유쾌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의 의심에서 벗어나 유능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버지가 불신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자유로울 능력이 있음을, 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애쓰는 나를 왜 믿어주지 못하는지, 이토록 살려고 발악하는 나를 왜 여리게만 보는지 억울했다.
아버지가 나를 믿고 사랑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지인들을 통해 아버지의 한숨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곳곳에는 나의 흔적이 있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함께 지낼 수 없는 딸과 언제나 함께 머무르고 계셨다. 나의 원망보다 아버지의 사랑은 더 큰 것이었다. 내 방식이 아니더라도, 내가 분명히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모습을 달리하여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의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었다.
아버지만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 또한 결핍감을 느꼈다. 엄마는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필요할 때마다 나를 보지 않는 사람, 내 요구에 자주 응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며 마음고생을 하던 중 문득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떠올랐다. 내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갈망했던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원했던 사랑이 충족되지 못했다는 슬픔과 동시에 엄마가 내게 보여준 따뜻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걱정하고 아파하던 날들이 기억났다. 엄마는 매 순간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순간 완전한 내 엄마였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는 내게 완전한 사랑을 주었다. 순식간이었다. 불만과 결핍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사랑으로 가득 차 올랐다.
현재,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침범하는 시간
지속의 시간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현재 순간을 생각할 때 이상적으로 규정하는 수학적 점의 이쪽에 있는가? 저쪽에 있는가? 그것은 동시에 이쪽저쪽 모두에 있으며, 내가 "나의 현재"라 부르는 것은 동시에 나의 과거와 미래를 침범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시간이 선형적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침범한다고 말한다. 무언가 행동하는 그 순간에도 과거로부터 멀어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첫 문장을 썼던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었으며, 이제는 마침표를 찍는 미래로 향해간다. 이렇게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분출하는 시간이다.
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어 덮어쓰기를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에 대한 역사를 썼다. 그 사랑이 다른 관계에서 어떻게 반복되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사람들과 어긋났던 순간과 동시에 깊게 스며들었던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직접적 과거의 지각이자 동시에 직접적 미래의 결정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과거의 사건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소환하는 행위는 늘 현재에서 일어난다. 지금의 시선과 감각으로 과거를 다시 채색할 때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나는 아버지의 믿음으로 과거를 다시 썼고, 엄마가 주었던 따스한 체온을 현재의 순간에 감각할 수 있었다. 내가 현재에서 다시 쓴 기억은 부모님과 함께했던 단순한 일화기억이 아니었다. 함께 있었던 찰나의 순간이 현재에 다시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몸속에 잠자던 기억이 정신을 차리며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과거가 내 몸에 다시 써지는 순간 과거의 기억 바뀌었다. 내게 있었던 과거의 사건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의 지도가 바뀐 것이다.
내가 과거를 괴로움으로 기억하는 일이 있다면 현재에서 과거의 문제가 다시 써지지 않은 것이다. 과거의 일로 원망과 미움이 남아있다면, 아직 현재에서 재경험하지 못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일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과거를 다루지 못한다면 문제의 과거는 여전히 부정적인 미래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괴로운 과거가 있다면 지금 여기서 그것을 다시 써야 한다. 현재에서 다시 쓰게 되는 이야기는 과거를 바꾸는 동시에 미래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