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꽃을 보낸다.

꽃 그림들

by 정희주
르느와르 <꽃다발>


전시장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을 보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와. 너무 예쁘다." 전시장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라고 했던 안내도 잊은 채, 나도 모르게 그만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버렸다. 진짜 꽃보다도 더 예쁘고, 다른 어떤 작품 보다도 눈에 띄었다.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화병과 푸른색 배경이 붉고 노란 꽃들을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했다. 르느와르는 생명이 지닌 아름다움을 극한치로 뽑아내는 화가였다. 르느와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만 같다. 실제로 모델이 된 이 꽃은 벌써 시들어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겠지만,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은 꽃의 아름다움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남게 될 영원한 기억으로 만들었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 생명에 대한 사랑을 남겼다.



에곤실레 <해바라기>


르느와르가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표현한 화가라면 반대쪽에는 에곤 실레가 있다. 에곤 실레는 추한 것을 더 추하게 표현한 화가였다. 그는 사람도 식물도 말라 비틀린 모습으로 표현했다. 꽃마저도 그의 그림 속에는 말라 비틀어 죽어가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실레의 그림 속 꽃은 죽어가기에 쓸쓸하고 서글프다. 이 슬픈 감정은 꽃이 생생히 살아 있는 순간이 있음을 알기에 느껴지는 감정이다. 꽃의 죽음을 보며 아름다웠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실레의 그림 속 꽃은 죽어가면서도 삶을 생각하게 한다. 언제고 쓰러질 유한한 사랑에 대한 간절함을 갖게 한다.


르느와르는 꽃의 생명을, 실레는 죽음을 그렸다는 점에서 다른 것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르느와르의 그림은 갖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고 실레의 그림은 처연함에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두 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그림 속에는 모두 삶과 죽음이 있다. 르느와르는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을 생명의 기억을 그렸으며, 실레는 죽어가는 것을 통해 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더는 르느와르 그림의 아름다움이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으며, 실레의 그림을 보며 슬픔에 비애에 젖지 않을 것 같다. 둘의 그림 모두 삶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펠릭스 발로통 <정물과 자화상>


얼마 전 딸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는 졸업식 얼마 전부터 꽃다발을 주문해 두었냐며 재차 확인을 했다. 예쁜 꽃다발을 받고 싶다고 했다. 집 앞에 꽃을 잘 다루는 집에서 아이 얼굴색을 닮은 붉은기 가득한 꽃다발을 준비해서 주었다. 아이는 졸업식 꽃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며칠을 보다가 꽃이 시들었다면서 꽃병을 밖에 내놓았다. 이전 같으면 시든 꽃만 골라 버리고 생생한 꽃은 작은 화병에 다시 옮겨 담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시든 꽃도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꽃다발의 모양만 다듬어서 아이 방에 다시 갔다 두었다. 젊음과 늙음이 공존하듯이 인생의 밝은 순간과 어두운 순간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순간을 묵묵히 견디며 삶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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