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너머의 사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

by 정희주

결핍을 메우려는 사랑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꼽으라면 단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이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서 리라를 받은 시인이자 연주자였다. 그는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에우리디케는 들판을 걷다 뱀에 물려 갑작스럽게 죽고, 오르페우스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산 자로서는 금지된 곳인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슬픔을 노래한다. 그의 음악 앞에서 저승의 심판자들과 형벌을 받던 영혼들 조차 고통을 멈춘다. 마침내 저승의 신 하데스의 마음도 움직인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지상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앞세우지 않고 자신이 먼저 걷는다. 출구가 가까워질수록 그는 불안해진다. 정말 그녀가 따라오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그는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저승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한마디 말을 남긴다.


“안녕히.”


조지 프레데릭 와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72-1877, 65X38, 캔버스에 유채


오르페우스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 그는 그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넘어지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내가 그녀를 돕지 못하면 어쩌지? 사랑하는 그녀를 잃는다면 어떡하지? 오르페우스의 간절함은 불안을 만나 기어이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의 불안은 그녀를 두 번 죽게 만들었다.


조지 프레데릭 와츠의 그림 속의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놀라 그녀를 안아보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오르페우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이 둘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결별의 순간을 맞이한 듯 묘사되었다. 불안과 불신은 결국 사랑을 파괴고 만다.


불안으로 인해 사랑을 그르치는 일은 흔하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자녀의 자율성 발달을 막는다. 자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몫을 미리 대신 걱정하고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성장을 막게 된다. 이런 일은 부모자녀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친구나 연인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언뜻 자상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상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게 되어 상대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에우리디케의 죽음은 독립성의 상실로 해석될 수 있다. 불안에 압도된 사랑은 상대가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을 믿지 못한다. 오르페우스의 행동은 사랑이기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려는 것이다. 상대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힘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잠재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은 채, 자신의 욕심(불안을 잠재우려는)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비극이다. 각자의 불안을 감당하면서 서로가 가진 힘을 믿고 함께 걸어갈 때 이들은 미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사랑은 믿는 것이다.



응답하는 사랑


오귀스트 로댕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대한 장면은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흔한 주제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르페우스가 앞에서 걷고 에우리디케가 뒤를 따르는 장면으로 묘사되거나,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보고 그런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에우리디케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로댕의 조각은 그것들과 다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절망하는 오르페우스를 에우리디케가 다가와 안아주는것 같다.


에우리디케는 지옥을 빠져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녀는 오르페우스를 원망했을까? 그녀는 그저 두 번 죽게 된 비극의 여주인공일까? 그녀는 "안녕히"라는 말을 하면서 사라졌다. "안돼!"가 아니라 "안녕히"였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어리석은 돌아봄 역시 사랑의 몸짓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기 전까지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에 살이 긁히기는 했지만 멈출 수 없었어. 네가 걱정할 테니까. 네가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잘 따라가고 있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 발걸음 소리라도 내며 앞서 걷는 너에게 나의 인기척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 너를 안심시키고 싶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의 외침뿐, 부지런히 너의 뒤를 걷는 것뿐.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게. 부지런히 너의 뒤를 쫓아갈게. 나 역시 너를 만나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미래에서 다시 만나."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에 의존하지 않았다. 자신을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하며 사랑하는 이를 따라갔다. 마지막 순간에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지만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의 절박함에 "안녕히"라고 응답하며 그와 이별한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오르페우스가 자신을 찾아 저승까지 온 용기에 감동하며 그를 믿고 따르려고 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대신하여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숨이 헐떡거리더라도 살이 찢기더라도 자신을 위해 저승까지 내려온 그를 위해, 그런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보며 웃음 짓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힘껏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가 자신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녀는 그러한 그의 몸짓 또한 사랑임을 알기에 작별인사를 고한다.


사랑은 결핍을 메우는 것이 아니다. 꼭 맞는 마지막 퍼즐조각을 찾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응답이다. 바라던 그 모양이 아니더라도, 원하던 그곳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라도 나는 끝까지 사랑하는 이의 몸짓에 응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너의 간절함을 기억할게. 영원히 그리고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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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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