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제의 '낭만에 대하여'
낭만 앞에 편견 없다.
낭만 앞에 편도 없다.
멋있다.
+맥락 없이 내용 노출될 수 있음+
내 멋대로 캐릭 단상
'낭만합격'
읊조리며 휘적휘적~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이 녀석이 등장할 때마다 문득, 어떤 단어가 비실비실 내려와 선명히 닿는다.
그의 밍숭한 흐느적 제스처가, 탁! 끊어 날리는 매운 주먹맛으로 바뀔 때처럼 쿵, 떨어진다.
.지리멸렬.
이 녀석을 가장 제대로 설명하는 기분이다.
*금성제 호칭은 '이 녀석'이 가장 맘에 든다*
그런데 한편에선,
지리멸렬?
진짜 정확한 뜻이 뭐지?
왜 이 녀석의 모든 제스처에선 이 단어가 떠오를까? 사전을 뒤져봤다.
딱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 어디에도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은 눈동자는 이 단어 자체 같다.
이 사람 편인가? 싶다가, 채 5분도 안되어 오랜 관계를 박차고 일어나 돌아서는 순간 정리될 정도로 뒤끝이 가뿐하다. 그러다 잠시 후, 정 반대 편의 사람 옆에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도, 박쥐 같은 빌붙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옆에 있어도, 그 누구의 편으로도 들어가지 않는, 돈도 사랑도 성공도 어느 쪽으로도 중심이 기울지 않는 마이웨이.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의 편에도 온전히 서 있지 못한 듯, 비칠 비칠 휘적휘적 걷는 모양새가 위태로워 보였다가 문득, 정반대로 단단해 보였다가 한다.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다.
순간적, 즉흥적으로 발견한 재미, 낭만에 반응할 때만 잠시 또릿해지는 눈동자에 빠진다.
오로지 그 순간에만 반응하며 무조건 반사처럼 뻗어나가는 선명한 주먹질, 가열찬 발길질 정도가 간신히 이 녀석의 오랜 '지리멸렬'의 시간을 지지하며 지탱해 주는 느낌이랄까.
이리저리 흩어지는 마음을, 시간을, 너무나 길게 겪어내는 중이라 하품처럼 지루해 보이기도, 지쳐 보이기도, 위태해 보이기도...
그럼에도 자기 연민에는 빠지지 않는 눈빛이 좋다. '그의 기준'에 뭣도 아닌 그렇고 그런 종자들 앞에서 '경멸의 확신'이 번지며 깔아보는 눈초리까지도 좋다. 이런 종자들이 감히(?) 눈을 내리깔지 않으면, 곧바로 응징해 버리는 모습에서 감지되어 보이는 게 섣부른 치기 어림이 아닌, '통찰의 신념'이라니... 허허. 위험하다. 이 녀석에게 느껴지는 단단함이란 이런 것이다.
실제 내 주변에서 스쳐간 인연이라면, 어느 날, 한순간에 무너져 부서져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해도 '그 녀석 답다' 아플 것 같고, 그 정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멀쩡하고 반듯하게 또렷한 눈동자로 뒤집혀 굳게 서게 된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그래, 이게 진짜 너지.' 하며, '너의 금성제 다움'에 활짝 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웰컴~잘 돌아왔어' 말해주며.
금성제는, 그렇게 다가온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묘하게 다 설득력이 있다.
그가 말로 뱉는 낭만과 재미는 같은 뜻으로 들린다.
그가 발견하는 낭만은 재미있고, 역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엔 낭만이 있다.
이 녀석이 애써 찾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이전까지의 모든 것들을 싹 다 버리고 새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 막강한 동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낭만이 있는 상대에게만 반응한다.
동조하고 때로 협력하고, 때론 가차 없이 버리고 무너뜨린다.
가끔 뭣도 모르는 새끼(?)들에게 '나백진 따까리'라는 말을 듣더라도, 재미있기 때문에 그런 말에도 섣불리 뒤집어지지 않는다. 낭만은 그에게, 어떤 경계나 높낮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낭만을 전하는 상대는 강하든 약하든 선하든 악하든 이 녀석에겐 아무 상관없다.
낭만 앞에 편견 없다.
낭만 앞엔 편도 없다.
멋.있.다.
하긴. 세상에 강약선악이 어디 있을까.
그의 낭만엔 공통분모가 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지키려는 힘'
혹은 '간절하게 가지려는 것'
이라 풀어 적고 싶다.
세상에...
낭만이란 말이 이렇게 지리멸렬한 표현으로 전락할 줄이야.
그가 협력하는 사람, 돕는 사람, 부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모두, 금성제 기준의 낭만이 있다.
그의 낭만 통찰은 정확하다.
그러기에 흔들림이 없다.
처음 화장실에서 연시은을 보고 감지한 막연한 재미 역시, 그런 직관이었을 것이다.
'다시 보면 존나 패버려야지'
발굴한 낭만 중 박살내고 싶은 버전에 속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시은에겐 파괴 욕구를 느낀다. 옥상에선 기를 쓰고 죽일 듯하고, 막바지엔 협력에서 배신으로 바꾸며 재미를 누린다.
'이거지'
연시은의 살기에 광기 어린 희열로 반응한다.
'내가 널 죽여야 끝이 나는 거지?'
헐떡이며 상대의 낭만을 기어이 부수며 느끼는 금성제는 분명, 쓰렸다.
망상이지만, 금성제는 자기 안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찾지 못한 그 어떤 것을, 연시은에게 발견한 것 같다.
덩달아 죽기 살기의 에너지를 쓰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오로지 이런 순간뿐이겠지.
그러면서 살아있음을 간신히 느끼는 걸까.
그래서일까.
연시은을 향한 금성제의 낭만 반작용은 괴상하게, 아프다.
발등 깊이 찍혀들어가는 혈투에서 패배한 후에도, 도움을 청하며 사과하는 연시은에게 '존나 감성적인 아이구나' 온화하게(?) 반응하던 금성제의 모습은 부럽기까지도 했다.
심지어, 대인배였어.
연시은과는 다르게, 준태에게는 협력을 선택한다. 쓰러져 곧 죽을 거 같아도, 친구를 지키려는 약자의 낭만에는 돕는 쪽으로 반응하는 걸까?
'너 대장 맞아? 얘가 네 대장 같아. 연시은도 그렇고'
뒤늦게 위험한 준태를 찾아온 박후민에게 팩폭을 날리는 순간엔, 오랜 친구에게 조언해 주는 것 같다.
'고맙다'며 담백히 인정하며 진심을 전하는 바쿠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대 딩~얻어맞은 듯 황당한 표정으로 '씨발~'을 뱉는 금성제는 흥미로웠다.
그가 바쿠에게 발견한 낭만은 어떤 것일까?
잘 읽히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곁을 지킨 나백진에겐,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박후민과의 우정과 돈을 빼돌리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은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금성제는 나백진의 시시콜콜한 사연을 다 알진 못해도, 특유의 '낭만 탐지기'로 나백진의 간절함은 감지했을 거다.
'나백진 따까리'란 오명을 '기꺼이' 오랜 시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나백진에겐 금성제에게 기꺼이 합격점을 받을 만큼의 깊은 낭만이 있었을 거다.
박후민과는 오랜 부부싸움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드라마상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바쿠에게 '백진이랑 부부싸움 좀 그만하고~'라는 말을 무심히 던지는 것도 그간의 관계 관찰을 통한 통찰이라 보고 싶다.
나백진과 오랜 시간 그렇게 재미를 느끼며(?) 함께 했지만, 옥상 싸움 패배 후에 파출소에 갔다 풀려난 이후, 자신의 안부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오로지 대포 통장만 걱정하는 나백진을 보며 미련 없이 돌아선다.
어쩌면 그는, 누구에게서든 자신을 향한 진심 한가닥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나백진에게 가차 없이 심플하게 돌아서는 금성제에게 그런 마음이 문득, 전해졌다.
Class2의 금성제에게 대뜸 느낀 슬픔은 이런 것이다.
이 녀석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향한 진심의 낭만을 찾지는 못했다.
그걸 해달라고 빌거나 절실하거나 비루해질 녀석도 아니다. 그는 이런 모습으로 그저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 오늘도 계속 휘적이며 걸어가겠지. 그가 찾아 헤매는 낭만이 부디 썩어 문드러진 것이 아니길, 부디 썩지 않는 것이기를 응원하고 싶다.
약한영웅 Class2에서 이 녀석의 모습을 보며, 한 번 정도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눈물을 흘렸고, 한 번 정도는 어이없어 실소가 터졌으며, 한 번 정도는 격렬히 응원했고, 또 한 번 정도는... 매우... 그리웠다.
이러한 이유로, 약한 영웅 Class2 중에서 내게 독보적으로 마음이 간 캐릭터는 금성제다.
원작 웹툰의 금성제는 단순히 '아, 미친...또라이 ㅅㄲ'였다면, 드라마 속의 금성제는 그보다 훨씬 더 풍만한 정서들이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전해진다.
배우 이준영에 빠진 이유다.
적어도 한 명의 관객에게만큼은 이런 정서들이 다 술술 읽힐 수 있을 정도로 그 캐릭터에 공감하고 체화했다는 건 감사하기까지 한 일이다.
실제 대면해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런 감정들 덕에, 나는 배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배우 리스트에 1인 추가요.
약한영웅 Class3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시즌 3을 보고 싶은 1인이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는 게 좋을 거란 예감이다.
그럼에도 만약 Class3이 열린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금성제를 더 보고 싶다.
금성제의 어린 시절 사연, 아픔, 트라우마,
이런 지리멸렬을 전하는 눈동자에 깃든 사연을 엿보는 건 '원하지 않는다.'그런 것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낭만타령, 재미타령,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외치며 어느 사이드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그에게도, 온전히 이 모습 그대로의 금성제에게도, 한가닥 진심의 마음을 써주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싶다.
금성제에게 한가닥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그 낭만을 전하는 이가 연시은이어도, 안수호여도, 박후민이어도 그 누구여도 좋겠다.
이 셋 중에 한 명이어도, 셋 다라면 더없이 좋을 거다.
다른 대상이 아닌, 자신을 향한 진심을 발견할 때 금성제의 눈빛은 어떻게 달라질지 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낭만보다, 금성제 스스로 자기 마음속의 낭만 한줄기를 발견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부디 아직 찾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한줄기 낭만을 발견하기를.
다른 사람을 향한 다른 사람의 낭만을 찾는 허기진 흩어진 눈빛보다, 나 스스로를 향한 내 안의 낭만이 전하는 풍족한 선명한 눈빛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하야, 오랜 지리멸렬의 시간을 뚫고 나온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이건 어쩌면, 금성제를 핑계로 써 내려간 내 마음이다. 그를 보며 발견한 내 자신에게 고한다.
지리멸렬의 시간을 견디고 있거나,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고 있거나, 애써 흘려보내고 있는, 그래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 내 마음에도 한가닥 지키고 싶은 낭만 한 조각만큼은 부디 남아있기를. 그래서 그 바늘구멍만 한 마음을 향해 흔들흔들하게라도 걸어가고 걸어가기를.
그러다 점점 커지고 단단해지기를.
내 안에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점점 커져갈 때 혹은 전부가 될 때, 언제고 오래 알던 지인처럼 금성제를 만나고 싶다.
이 마지막 바람을 쓰기 위해, 금성제의 낭만을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홀연히,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듣고 싶다.
진실됨, 간절함, 믿음, 지키고 싶은 것... 이런 것들을 정직하게 감지할 수 있는 그이기에, 꼭 이 녀석에게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