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두껍고 마음은 따뜻한 아이
경계가 두꺼운 아이가
세상에 문을 여는 방식
연시은 1막,
표면 : 까칠하고 무심한 아이
"아, 실수라는데, 미안하다는데, 조심하라니~~이?"
"그러니까...실수...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연시은의 날이 선 눈빛과 답변은, 지나가다 언뜻 들으면 인정 없고 경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명, 싸가지가 없다.
하지만 상황을 뜯어보면,
'실수였다, 미안하다' 말한 아이가 얼마나 악질적으로 깐죽깐죽 연시은을 건드렸는지 알게 된다.
연시은 특유의 가시 돋친 무심한 대답이나 반응은 자신을 지키려는 최선의 방어이자 경고다.
하찮은 상대를 제압하는, 연시은의 조용한 공격이기도 하다.
연시은을 알게 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표면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연시은은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서늘한 표정, 까칠한 태도, 주변에 무신경한 반응, 싸가지 없는 말투로 경계가 두꺼운 아이다.
학급에서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아이의 계략으로 범석이를 통해 연시은의 목에 마약성 진통제가 붙는다.
모의고사 시간에 점차 집중이 흐려지고 구토가 난다.
화장실에서 게우고 세수하고 돌아와 앉아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자기 뺨을 무심한 표정으로 대차게 후려친다.
짝-
짝-
짝-
세 번째쯤에서,
보는 사람은 숨을 죽이고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예쁘장한 모범생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약한영웅의 캐릭터 설명 방식은 이런 점이 좋다.
현재의 스쳐가는 말 한마디, 행위, 번뜩이는 눈초리 등으로 관계를 설명하고 상황을 납득시킨다.
딴소리지만, 감독이 슬램덩크를 좋아할 것 같다. 분명하다.
(참고로, 클래스2에서는 슬램덩크 애니 OST가 나온다니까!)
연시은 2막,
능력 : 학습을 활용하는 아이
드라마 속에서 연시은의 학습 능력은, 주로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데 활용된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폭력이지만, 들이대는 상대가 거친 만큼, 그 강도도 센 편이다.
뉴턴 제2법칙,
파블로프의 개 훈련법 등이 등장한다.
친구들과 당구를 칠 때는
물리에서 배운 역학 관계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허 참,
응용력 뛰어난 친구일세.
연시은의 이 능력은
약한영웅 클래스2에서 더 멋지게 활용된다.
클래스 1에서는 싸우기 위해 주변의 물리적인 도구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만, 클래스 2에서는 사람을 활용하는 경지까지 올라간다.
암튼 이 젊은이는,
뭘 해도 하겠다.
연시은 3막,
내면 : 영혼에 타격이 없는 아이
"새끼가 영혼이 다치질 않는다고, 영혼이..."
늘 연시은에게 성적에서 밀리는, 어떻게든 그를 뭉개보려 하는 학우의 묘사다.
이 말처럼 그는 자기가 떳떳한 곳에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꿀리지 않는다.
물리적인 힘이 큰 상대라도 아랑곳없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여러모로 정반대 극성에 있는 안수호와 통했을지 모른다.
안수호 역시 다른 방식으로 영혼이 다치지 않는 아이다.
둘은 오그라들겠지만
‘영혼 단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관계다.
가출팸에 어쩔 수 없이 엮였을 때를 보자.
무너뜨려야 할 상대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온몸을 다 던져
기어이 해결해내고야 만다.
안수호는 아마
시은의 이런 무모함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넌 말야...진짜 똘아이야...알아..?'
'내가 들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공공의 적을 함께 무찌르면서, 시은은 최소한 한 명에게는 마음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 한 번 열린 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연시은 방식의 투둘투둘한 따뜻함은 그 상대만이 느끼게 된다.
연시은 4막,
배경 : 알아서 잘하는 아이
연시은의 '두꺼운 경계'에 대한 힌트는
늘 텅 비어 있는 큰 집, 불 꺼진 집에 혼자 있는 모습에 있다.
가끔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있지만
대화는 건조하다.
엄마는 유명 1타 강사로 책상머리에 앉아 작은 모니터 화면 속에서 만난다.
"우리 애는요, 내가 공부하란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요.
알아서 잘하니까요."
연시은의 학업 집착은 여기서 풀린다.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은을 서로 떠넘기려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도 아빠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 버린 아이라면,
어떤 관계가 그에게 의미가 있을까.
알아서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신념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벽을 치고 오로지 책상머리 교과서 속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아이일지, 아니면 학습 속으로 도피하고 있는 아이일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엄마는 일타 강사, 아빠는 유도 전문 스포츠 코치였던가.
중산층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은 오히려, 연시은이 아픔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누군가에게는 잘사는 집을 넘어 훌륭한 집안의 모범적인 아이의 아픔이 배부른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오류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환경에 빗대어 무게를 재듯 평가한다.
하지만 개인 안에 있는 아픔에는, 가볍고 무겁고 투정이고 배부른 소리라는 구분이 없다.
아픈 건, 아픈 거다.
친절한 부모, 완벽한 부모는 그 상냥함이 아이에게 어떤 폭력이 되고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지닌 눈빛의 무게는 '반항기'라는 말 하나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버겁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는 말로 방치되는 아이의 아픔을 한 번쯤 써보고 싶었다.
부모란 아이를 이렇게나 모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연시은 5막,
상처 : 감정을 누르며 스스로 다치는 아이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도, 억울함을 토해내지도 않는다.
대신 계산한다.
상황을 읽고, 방법을 찾고, 해결한다.
겉으로 보면 단단하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저 눌러 두고 있을 뿐이다.
상처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소모되는 건 자기 자신이다.
몸을 던지고,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자기를 갈아 넣듯 해결하려 든다.
연시은에게 감정은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연시은의 상처는 밖으로 드러나기보다 안쪽에서 조용히 깊어진다.
울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계속 앞으로 간다.
그리고 그 방식이 결국,
자기를 가장 많이 다치게 만든다.
연시은 6막,
폭주 : 관계가 부서지며 무너지는 아이
안수호가 쓰러졌을 때,
연시은 안에선 '선'이 끊어진다.
그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는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끝까지 간다.
그동안 눌러 놓았던 분노,
말하지 않았던 억울함,
버텨왔던 감정들이
가장 아끼던 것을 잃는 순간,
한꺼번에 터진다.
연시은의 싸움은 이때부터 방어가 아니다.
파괴다.
그리고 그 폭주의 끝에서
연시은은 또 하나의 관계를 잃는다.
안수호는 병원에 있고,
오범석은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가버린다.
셋이 가장 안전했던 구조는
그렇게 완전히 부서진다.
연시은은 처음으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순간을 맞이한다.
눌러두기만 한 감정은 결국 통제불능이 된다는 걸 배운다.
그렇게 하나의 단계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약한영웅 클래스2로 이어진다.
연시은 7막,
성장 : 무너져야 나올 수 있는 아이
경계가 두꺼운 만큼 그것이 깨어지는 방식이 요란하고 둔탁하다.
경계가 높았던 만큼 무너짐의 강도가 거칠고 처참하고 처절하다.
연시은은 그런식으로 거친 환경 속으로 휘말리며, 친구들과 함께하며 그 경계를 깨 나가기 시작한다.
클래스 1에선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제끼며 아끼던 친구를 두 명이나 잃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의 마음은 또 다른 친구들을 향해 다시 열릴 것이다.
연시은이 세상과 가까워지는 방식은 아프지만, 결국엔 웃을 것이다.
쨍그랑, 와장창, 퍽, 우당탕, 쏴아아
그가 맞이하고 겪어내야하고 이겨내야할 마음의 소리이자, 현장의 소리들이다.
연시은의 성장은 이런 측면에서 설명된다.
약한영웅 시리즈는 그래서 흥미롭다.
무너지는 만큼 가볍게 성장한다.
화이팅이다, 연시은!
우리 모두의 친구가 될 그날을 응원한다.
*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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