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의 그늘, 죄책감, 멋짐에 관하여
경쾌하게 열리는 아이
묵직하게 지키는 아이
쾌활함 속에 억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억텐 : 억지로 텐션 올리며 분위기를 띄워야 직성이 풀리는 - 대략 이런 뜻일까?
뭐랄까.
조금 불쾌한 유쾌함이랄까.
이런 사람들 중에 우울감이 세거나 힘든 사연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면, 엄청난 꿍꿍이를 마음 뒷배에 따로 꼬불쳐두고 있거나?
들추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한 반동 심리 같은 걸까?
심리학자도 아니고, 굳이 파고 싶지는 않다.
박후민도 쾌활함이 다소 넘칠 때가 있다.
그런데, 불쾌감이나 불편함은 없다.
천성이 밝다.
악의 없이 직선으로 해맑다.
묻어둔 감정은 있지만, 자기 방어적이진 않다.
감정을 숨기고 누르고 비틀며 자신을 감추는데 에너지를 쓰기엔 너무 훤-하달까. 환-하달까.
투명하게 텅텅 비어, 맺힘 없는 '핵인싸' 재질이다.
유쾌하고 가볍지만, 경솔하거나 경박하진 않다.
지켜야 할 건, 조용히 묵직하게 지킨다.
이런 대비가 멋진 아이다.
쾌활함 속에 슬쩍 전달되는 바쿠의 억텐은, 현실 배우가 자기와 상극인 캐릭터를 만나, 감당하는 과정에서 충돌하며 부대끼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게 묘한데, 그래서 어눌하게 뚝딱이는 바쿠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화이팅 넘치는 억텐은, 나백진과 얽힌 죄책감을 외면하는 반동심리인거여? 아니면 배우 본체와 설정된 캐릭터 사이에서 오는 갭차이를 오버하며 메꾸는 중인거여?
실제로는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른다.
둘 다일 수도?
이런 게 뭐가 중요하냐...
어쨌든, 적어도 내겐, 이런 부분마저 흥미롭게 작용했다는 거다.
금성제와 혈투를 벌인 직후 깨어난 연시은이 묻는다.
'백진이는 너한테 왜 그러는 거야?'
연시은과는 마음이 꽤 가까워졌음에도, 답변은 간단하다.
'그냥... 어릴 때, 동네 친구...'
고현탁과의 사연은 시시콜콜 공유할 수 있어도 나백진과의 아픔은 시시콜콜할 수 없는 그 무엇.
그의 죄책감은 책임감과 닿아있다.
그 감정은 애써 감출 필요도, 굳이 떠벌릴 필요도 없다.
'...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제일 견디기 힘든 건, 그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더라고...'
조용히 자기 안의 죄책감을 슬쩍 오픈하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이 뭐냐~~~!
흠, 아... 단어가~ 생각이 안 나네.'
바쿠는 다시 일부러 업하지만, 연시은은 텐션에 속지 않는다. 아픔의 무게를 감지한다.
'... 죄책감'
같은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두 사람의 공감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체로 뜨겁게 헤벌헤벌한 이 아이의 표정이 싹-굳을 때가 있다.
'나백진'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다.
정확히는 나백진이 자신과 연관된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 때다.
그리고 나백진과 대면할 때다.
처음 연시은이 나백진을 만나고 난 후, 농구부 방에 관계를 정리하러 들어오는 순간이다.
'나백진 만나고 왔어'
연시은의 이 한마디에, 반가워 헤벌쭉 올라간 안면 근육이 순식간에 툭 내려앉는다.
'...뭐?'
싹-식는다.
'니들이랑 어울릴 시간 없으니까, 나는 빼줘'
연시은은 싹수 터지는 방식으로 관계를 끊는다.
구차한 상황 설명은 필요 없다.
나백진으로부터 안수호를 지키기 위해서다.
고현탁은 발끈하지만, 박후민은 자세를 고쳐 앉고 차분해진다.
'... 응, 무슨 말인지 알겠고...
그러자. 앞으로는 아는 척 안 할게'
희미하게 슬쩍, 씁쓸하지만 담담하다.
고현탁은 모르지만,
박후민은 안다.
구차한 상황 이해는 필요 없다.
나백진으로부터 연시은을 지키기 위해서다.
바쿠에겐 연시은에 대한 호감보다, 연시은이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본인이 원하는 관계 유지보다 상대를 지키려는 단절을 선택한다.
연시은과 박후민이 같은 심정으로 교감하는 느낌이 든다.
너저분한 설명 없이도 상대의 반응과 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소통이라니.
너무 멋진 거 아니냐며.
단아하고 깔끔한 종결.
이 순간이 가장 박후민답다고 느껴졌다.
동시에, 배우 려운이 함께 보였다.
그래서 매우 멋찜 터진 순간이다.
나는 이때의 바쿠 말투가 참 좋다.
뭐랄까. 텐션 빠진 찐텐이랄까.
진짜 자기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이다.
나백진은 박후민을 향해서만큼은 끈질긴 찰기를 지녔다.
'하여간 너랑 나랑은... ㅈㄴ 안 맞아'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악연이 되어버렸을까? '나백진의 소중한 특정인에 대한 관계 집착'과 이토록 집착하는 '나백진의 숨은 진심'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는 '박후민의 단순함'은 절대 조화롭게 섞일 수 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끌어들인 나백진에 말려 결국 연합에 휩쓸린다.
나백진의 밑으로 들어온 박후민은, 연합 세력 서열을 위한 폭행까지는 감수하지만, 오토바이를 훔치는 '양아치 짓'까진 감당하지 못한다.
박후민은 절대 친구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선 짐과 책임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연시은이 나백진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혼자 해결하려던 자신의 뜻이 무너지며 폭주의 틈새가 열린다.
하지만 덕분에,
혼자 다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값진 계기를 맞이한다.
'내 주변 사람?
그래, 어디 네 멋대로 해봐!'
그의 정면 승부는 혼자 모든 주변을 다 책임지려는 짐을 벗으며 시작된다.
그러니까 연시은은, 박후민의 마지노선 같은 친구다.
Class 2가 경쾌한 리듬감을 선택한 덕에, 이들의 심리가 다소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쉬웠다.
처음엔,
'아니, 뭐 얼마나 보고, 얼마나 교감했다고 저렇게까지 금방 마음이 깊어지지?'
라는 뻘-함이 있었다.
'청소년기잖아~'라는 합리화로 납득해 갔다.
그런데,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바쿠의 연시은을 향한 마음이 쏟아지듯 와닿았다.
박후민은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자기 때문에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에 갇혀 있다.
자기 때문에 망가진 첫 번째 친구는 나백진,
(아마도) 나백진의 질투(?)로 인해 크게 다쳐, 무릎과 태권도를 잃은 고현탁,
여기까지가 박후의 '죄책감이 폭주를 누르는' 절대 마지노선처럼 보인다.
자기 때문에 망가졌다고 믿는 나백진에게,
다른 누구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다.
그 모든 책임이 자기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박후민의 오토바이 폭주씬은 여기에 닿아있다.
고현탁이 '또' 자기 눈앞에 쓰러진 걸 보고, 눈이 돌아간다.
현장으로 돌아오던 연시은의 사고 소식에 맥이 풀린다.
연시은의 사고는, 눌러둔 박후의 죄책감을 표면 위로 거세게 밀어 올린다.
'죄책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가장 솔직하게 자기감정과 대면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이런 섬세한 감수성이 어울리는 박후가, 아니 배우가, 대차게 강백호 시뮬레이션을 했으니... 나름 힘들었겠다.
감정이 진솔하게 오픈되는 순간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눈물이 흐르고 마르고는,
우리의 진심과는 상관없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차게 식으면 식는 대로
내비두면 그뿐이다.
바쿠가 보여주는 방식은 이러하다.
감정에 있는 그대로 솔직한 태도.
이 극명한 온도차가 박후민을 멋지게 만든다.
드디어 결전이다!
박후민은 나백진을 이해한다.
한때는 서로에게 꽤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백진에겐 유일한 친구다.
이해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래서 정면으로 선을 긋는다.
냉정함이라기보다, 가장 솔직한 결론이다.
박후민의 방식은 단순하다.
외면했던 시간들은 길었지만, 정면 승부를 결심한 이후부터는 모든 게 명쾌해진다.
이 싸움 속엔 어린 시절 서로를 지켜온 우정,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 나백진의 서운함, 박후민의 죄책감과 후회...
오랜 시간 뒤엉킨 무거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가며 흩어진다.
그래서 이 싸움에는 미련이 없다.
박후민의 힘과 연시은의 전략과 함께 모인 친구들이 신나게 싸우고 기어코 승리한다.
반칙 수준의 승리다.
그래도 괜찮다.
무. 조. 건. 이겨야 끝을 낼 수 있으니까.
승부는 정면으로 미련 없이
사과는 담백하게 뒤끝 없이
나백진 죽음에 대한 애도는 있어도,
죄책감에 다시 묶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응원한다.
묵은 감정은 장대비 쏟아지는 싸움터에서 후련하게 날렸다.
진심으로 털어낸 감정은, 그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옭아매진 않을 것이다.
다만, 오랜 친구를 이 지경까지 내몰아 붙인 범죄조직 '천강'에 대한 응징은 시작될 수도 있겠다.
* Class 3 제작진은 얘들 더 성숙해지기 전에 바빠져야 하려나...
주인공들이 바뀌는 건 말이 안 되고, 아이들이 나이 든다고(?) Class 2에서 종결하기엔 아쉬움이 크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 네이버에도 같은 글이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은 네이버에 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