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했지만 결국 혼자였던
가장 강했지만
결국 혼자였던
연민과 동정은 내 영역이 아니다.
주제넘은 감정이라 생각한다.
다만, 쓸쓸했던 아이란 생각은 들었다.
싸우는 힘, 재력, 학업 능력을 동시에 키운 동력은 아마도 보육원 출신이란 '열등감'이었을 것 같다.
조직을 관리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천강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거기에 보육원 동생들을 책임지기 위해 따로 살림까지 챙겨야 하는 짐을 지고 있다.
어휴다, 어휴...
그가 감춘 간절함이라면 이런 측면이다.
하지만 그의 간절함은 기본을 외면하고 범죄도 아랑곳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누구도 진실된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보인 연합의 두 사람과, 아직 그의 죽음조차 모르는 금성제만이 그나마 마음을 쓴 편이다.
그 외 그에게 붙어있는 무리들은 대부분 '돈'이 목적이다.
아마, 나백진은 연합 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나 보다.
마지막 싸움터에서 지고, 혼자 쓰러져 남은 아이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돈세탁하고 오토바이 불법 거래하는, 창고같이 휑한 볼링장 사무실에서 틀린 수학문제를 홀로 풀고 있는 모습이라니.
끊임없이 자기 기준만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렇게 시간 쪼개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이 머쓱,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박후민과의 애증 관계
어린 시절, 조심스럽게 보육원이 자신의 집이라며 오픈했을 때, 박후민은 편견 없이 말했다.
'와~집 진짜 크다. 우리 집은 좁아터졌는데.'
'농구대가 있네?? 농구하자!'
어쩌면 나백진은 처음으로 자신을 꺼리지도, 낮춰 보지도 않는 시선을 만났을지 모른다.
농구를 함께하고, 늘 또래에게 당하던 자신에게 싸움을 가르쳐 준 바쿠는 나백진에게 관계의 전부가 되었을 것이다.
바쿠에게 온 마음을 빼앗겼을 것도 같다.
나백진은 진정한 친구로는 바쿠만을 담길 원한다.
그렇게 관계에 선을 긋고 닫는 아이다.
박후민은 다르다.
그는 끝없이 관계를 오픈해 가는 아이다.
두 사람은 관계를 대하는 기질부터 이미 어긋난다.
바쿠는 '보육원 출신'이라는 나백진의 짐을 모두 알기에, 그걸 벗어나기 위한 나백진의 발악 같은 심정까진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용납이 안된다.
그의 말 따라,
'존ㄴ안맞는다'
설득에 설득의 과정을 거쳤겠지만, 금성제의 표현을 따서 '부부싸움'을 반복하며 결별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마도 고현탁의 무릎이 망가진 사건이, 박후민이 냉정히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나백진은 박후 덕에 습득한 싸움 기술로 세력을 키운다. 돈이 된다면 범죄든 아니든 상관없다.
박후민은 나백진에게 싸움을 가르쳤다는 죄책감이 있다. 그를 망가뜨린 원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백진이 주변을 다치게 하는 것은 곧 자기 탓이다. 그래서, 연합 안으로 수렴되길 거부하며 은장고를 지킨다.
박후민은 나백진에 대한 마음을 끊어낸 듯 끊어내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정면승부를 외면하지만, 그릇된 양아치 짓에서 확실히 돌아선다.
연시은의 사고, 고탁과 준태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드디어 질기고 질긴 고리를 끊기 위해, 나백진과 정면승부를 맞이한다.
박후민과 나백진은 이렇게 대립을 이룬다.
박후민이 알아주기 바란,
끝내 알려지지 않은 진심
박후민은 나백진이 원하는 것을 '서열'의 관점에서 밖에 보지 못한다.
'내가 졌다, 백진아... 네가 원한 게 이거 아냐. 내가 네 밑이라고 인정하는 거'
박후민의 입장에선, 나백진을 배려한 최선의 진심이었다.
나백진은 허탈하게 웃는다.
'하아... 내가 바라는 거...'
유일한 친구에게 기대고 싶었던 나백진의 진심에는 닿지 못한다.
어쩌면 나백진이 직접 말하지 못한 이유는, 바쿠가 먼저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백진은 너무 섬세한 아이였고
박후민은 그저 단순한 아이였다.
그토록 알아주길 원했던 박후민은 야속할 정도로 눈치가 없다.
박후민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고현탁의 설명 한마디를 퍼즐처럼 맞춰 이 둘의 관계를 읽어내는 건, 연시은이다.
아마 나백진이 가장 크게 흔들린 순간은, 연시은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본인의 진심을 말할 때일 것이다.
'이렇게 잘하는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뭔지 모르지만 후민이는 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 후민이가 내 약점을 알고 협박하기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라고?'
'아니, 너를 온전히 알고 있는 박후민을 유일한 친구라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후민이도 너를 친구로 생각할까?'
나백진과 연시은의 대면 중 가장 뜨겁고 동시에 아린 장면이라면 이것이다.
연시은은 상황을 보지 않아도 관계의 핵을 꿰뚫어 본다.
아마 오범석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통찰일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왜인지, 연시은과 오범석의 관계가 겹쳐 보였다.
만약 연시은과 오범석의 관계가 계속 이어졌다면, 박후민과 나백진 같은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싸움 장면에서
박후와 나백진의 해후의 순간이, 연시은과 오범석이 함께 마음을 푸는 순간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미안하다, 백진아. 미안해
너도 나한테 미안해라'
'미안했다, 범석아... 미안해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미안해라'
연시은과 마음을 트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틀린 수학문제 힐끗 보고 '변수를 먼저 분리하라'는 조언을 주는 아이, 자신의 진심을 단숨에 읽는 아이와 새로운 관계가 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의 관계가 끝내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 나백진 스스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 쓸쓸하다.
원작 웹툰 마지막 장면에서, 나백진은 도로 위에서, 연시은에게 그리움을 담아 다시 싸우자고 외친다.
그러다 갑자기, 트럭에 치여 죽는다.
이 장면이 황당해서 원성이 높았는데, 드라마는 그 비어 있던 감정의 공백을 채워 준 느낌이었다. 그를 들이받은 트럭이 천강과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웹툰과 전혀 상관없는 상황 설정이지만, 묘하게 감정선이 크로스 오버되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였다.
원작 웹툰을 본 사람 입장에서, 캐릭터 갭차이가 가장 큰 아이는 나백진이다.
원작 팬들 사이에선 거센 반감이나 논란(?)으로 좀 시끄럽기도 했던 것도 같다.
원작에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던 나백진은 드라마에서 박후민과 비슷한 수준으로 파워가 낮아진다. 한참 '다운그레이드' 된다.
박후민과의 숨겨진 사연이 덧붙으며 감성이 더해진다.
오히려 피지컬이나 파워 면에서는 박후민보다 약해 보이기도 한다.
박후민이 밀리는 걸 보며 강제 공감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 배우일 수밖에 없었다고 납득하게 되는 이유는 마지막 싸움 장면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박후에 대한 서러움, 울분, 어떻게든 박후민을 관계 안으로 붙잡아 두려는 집요한 간절함이 표정으로, 주먹으로, 박후민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으로 전달된다.
싸움 액션은 늘 건너뛰기하며 보던 내가, 건너뛰지 못했던 이유는 나백진과 박후민 사이에서 주먹과 함께 터져 나오는 감정들 때문이었다.
연시은이 온갖 변수를 만들어 흔들고,
박후민과 꼼수를 두고,
반칙까지 불사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대.
나백진은 그렇게 끝을 맞이한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였던 은장고 4인방과, 홀로 쓰러져 누워있던 나백진이 대비를 이룬다. 이 아이의 외로운 싸움의 끝에선 쓸쓸함이 전해진다.
'함께'를 갈망했지만,
결국 혼자 남은 아이,
나백진이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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