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글과 내가 쓴 글 사이에서
매끄러운 글 무덤
그 안엔 내가 없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AI한테 내 생각을 던지고, 글이 나오는 걸 보면서 — 이게 내 글인가 싶은 순간이 있다. 결과물은 괜찮다. 읽히고, 정돈되어 있고, 부끄럽지 않다. 근데 뭔가 허하다.
그 허함이 뭔지 잠시 생각했다.
내가 없다는 거다.
AI는 내 생각을 받아서 글로 만든다. 근데 그 과정에서 내가 틀리게 표현한 것, 설명 못 한 것,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다 정리되어 버린다. 매끄러워지는 대신 날것이 사라진다. 그 안에 나만의 표현이 있었는데. 그 표현 속에 내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잘 정리된 그 매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다.
나의 글투, 나의 말투 — 날것의 생각투를 모두 죽여버린다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투박하고, 때로 흥분하고, 때로 까칠하고, 냉소적인 시선이 걸러지고 그저 매끈해지는 이 부분을 놓고, 매일 AI와 싸우거나(?) 다스리기를 하고 있다.
내가 너랑 뭐하고 있는거냐...
완전하게 잘 다듬어져 매끈해진 것과 투박한 손길과 생각의 흔적이 까끌하게 남은 것 — 어느 쪽이 더 그리워질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아직 미련을 떠는 단계지만, 그 미련이 맞다고 느낀다.
글은 찍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글쓰기는 그것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를 향해 내 생각을 고하며 나를 비워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매끈함 속에서 진솔하게 토해내고 싶은 욕구까지 반영하는 건 — AI가 할 수 없는 일이다.
AI가 쓴 글들은 더해질 수 있어도, 내 생각을 비워내는 일까진 해내지 못한다. 내 안에 담긴 걸 꺼내는 작업. 그 작업에 필요한 시간까지 효율성이란 가치와 바꾸고 싶지 않다.
그래서 AI를 적절히 활용해도 백 퍼센트 의지해서 글을 써내고 싶지 않다. 내가 아니면 나오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들이 더 잘 보이는 세상을 위해 시간을 써보고 싶다.
효율성과 속도에 치이며 쏟아지는 글들 사이에 파묻혀갈지도 모른다.
물론 안다.
지금 당장은 찍어내는 사람들이 숫자로 이긴다. 조회수도, 수익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또 고민하고 갈등하겠지.
AI로 빠르게 찍어내는 사람들의 방식도 틀린 게 아니다. 각자의 목적이 다르고, 각자가 원하는 게 다르다.
근데 피로해지는 시점은 반드시 온다.
나는 이미 피곤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다 비슷한 글들 사이에서 "이 사람 글은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 — 희소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다. 정보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느껴져서 찾아오고 싶은 글. 그 '사람 냄새' 때문에 오는 독자.
앞으로 AI가 찍어내는 글쓰기 시장의 브랜드는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그게 수익으로도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긴 하겠다.
AI가 쓴 글은 그냥 감지할 수 있다.
정보글은 보긴 한다. 잠시 스캔하는 시간도 허용하지 않은 채 가차 없이 나와버릴 때도 있다.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
글 무덤의 시작이다.
글이 묻히는 것 자체보다 더 무서운 건 따로 있다. 쓴다는 게 뭔지, 읽는다는 게 뭔지 개념이 희미해진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많아지는 것.
그런 것들이 진짜 무섭다.
AI 시대에 읽는다는 건, 어쩌면 고르는 행위일 수도 있다. 이 글에 사람이 있나, 없나. 그걸 감지하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역설적으로 이런 감각들이 더 키워질 것도 같다.
쓴다는 건 두 가지로 갈라진다.
생산의 도구로 쓰는 사람과 — 쓰면서 내가 뭘 생각하는지 발견하는 사람. 후자한테 글쓰기는 사고의 방식이자 비움의 방식이다.
그건 AI가 대신할 수 없다.
AI한테 모든 걸 맡기는 순간 결과물은 생기는데, 비움으로써 발견하는 '진짜 나'는 사라진다.
그 발견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AI와 경쟁하거나 싸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그럴 대상이 아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어떻게 공생해야 할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활용하면서도 내 글투가 죽어나가는 것에 불쾌하거나 찜찜하고, 안 쓰자니 그건 이 세상을 등지는 것 같다. 혼자선 너무 느리고. 그 혼란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아마 한동안은 매끈히 정리되진 않을 것 같다.
웃기는 똥고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근데 진짜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이게 맞는 길인지, 그냥 시대를 못 따라가는 건지. 그 답을 찾으려고 오늘도 시간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글 안에서도 나는 분명, AI를 활용하며 시간을 아끼고는 있다.
이러면서 맞춰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겠지.
지금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타협인지, 방향인지 모르겠는 그 어딘가에서.
AI가 내게 하는 답변은, 그래서 재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글을 써나가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 네이버에도 같은 글이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은 네이버에 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