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는 없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명) 연속적으로 나타나서 남을 괴롭게 하는 각색의 사람들
쓸모없음은 없다.
살아있음 자체가 의미이므로
누군가 그랬다.
“너는 살면서 잉여가 되지 마라.”
1번 뜻은 확실히 신경을 긁는다.
잔소리, 훈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참견들.
마치 내 귀에 “웅웅웅” 모여드는 모기떼 같다.
사방에서 달라붙어 성가시게 하는 무리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고 마음이 메말라진다.
때로는 “다 필요 없어!”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2번 뜻은 왠지 슬퍼진다.
쓸모없는 무리, 잉여, 어중이떠중이…
사전 속 한 줄이 내 어깨를 툭 치는 것 같다.
하루를 뜻 의미 없이 갉아먹은 듯한, 탕진한 기분이 드는 날엔 울적해진다.
이런 게 뭇따래기 갬성인가 보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쓸모없음’을 통과한다.
오늘 하루를 허비했다고 자책하는 순간에도,
지금 이순간의 작은 기회를 위한 씨앗 같은 시간이 숨어 있다.
뭇따래기라는 말은 날카롭지만,
그 속엔 은근한 자각도 들어 있다.
남을 괴롭히는 뭇따래기가 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를 무가치한 뭇따래기로 깎아내리지도 말아야 한다.
어중이떠중이라 생각되는 순간에도,
내 삶은 여전히
'살아있음 그 자체'
'살아내고 있음 그 자체'로 충분하다 것을 기억하고 싶다.
이게 참. 마음에서 진심이기가 쉽지않다.
스스로 무가치하다 여기는 수렁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걸 얼마나 빨리 털고 일어나느냐의 선택이 현명지수를 높이는 일일 거다.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리지도, 늘어지지도 않는다.
쓸모없음 같아 보여도,
결국은 무언가를 키우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위안을 해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랬다.
누구나 세상의 사랑을 온전하게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이 세상에 버려진 이는, 쓸모없는 이는 애초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그러니, 뭇따래기든 잉여든 그런 건 없는 거라 믿고 싶은 거다.
나에게 뭇따래기란 어떤 존재인가요?
스스로 뭇따래기라고 여겨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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