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핑계로 부여잡고 싶어라
짧아지는 가을을 한탄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부지런히 가을을 누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건, 작년 2024년 11월 말쯤—
대책 없는 폭설이 쏟아진 날, 동네 공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
조금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급 추위.
덕. 분. 에.
짧아진 가을,
길어진 더위와 갑작스러운 추위로, 단풍과 은행잎은 채 무르익기도 전에, 함박눈이 아직 떨구지 못한 나뭇잎을 덮쳤다.
노랗게 변한 나뭇잎 위로 함백눈 조화라니.
생경한 장관에 감탄했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잎새들은 아마 더위에 속아(?)‘아직 질 타이밍이 아냐’ 버티다, 추위에 질려 곧 떨어졌을 것이다.
‘아니, 왜 지금 눈이야? 벌써 나를 덮쳐?’
‘어쩌라고. 더웠다 추워지니까 펑펑 마려운데.’
함박눈은 폭닥 따스해 보이지만 차다.
수백 년 동안 익숙했던 기후가 갑자기 변해, 나무들도 혼이 쏙 빠졌을 듯하다.
단풍은 충분히 무르익을 틈도 없이, 계절이 넘어갔다.
급히 추워져 눈치 없이 펑펑 내린 눈도, 아직 다 가시지 않던 더위에 순식간에 와르르 녹아 사라졌다.
단풍과 은행은 충분히 무르익어...
제철 과일처럼 환하게 노랗고, 화려히 빨갈 예정이었을 거다.
길어진 더위에 습한 공기가 오래가니, ‘아직 익을 시즌이 아닌가벼’ 했다가, 이제 막 무르익을 만하니 급추위가 찾아와 나뭇잎들도 제 색을 찾느라 허둥댔던 것 같다.
지난해의 붉은빛은 그래서,
홍옥 같은 빨강이라기보다 벽돌빛에 가까운 적갈색이었던 기억이 난다.
화사해지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서두른 찬바람에 질려버린 색감인듯 안쓰러웠다.
올 가을, 아직 은행과 단풍잎은 초록이 한창 남아 있는데, 단풍 절정이라며 고속도로는 북적인다.
아마 올해도 작년처럼 그럴 것 같다.
길게 질척이는 늦더위와, 이른 추위에 허둥대는 가을빛이 펼쳐지겠지.
이 기후 변화 속에서도
너희들, 건강히 버텨라.
환히 고운 때깔이 아쉬운 건 아니다.
그저 내 사랑, ‘가을이’를 오래 붙잡고 싶은 마음뿐.
누릴 시간이 짧아진다는 게 서글프다.
도대체 누가 우리 가을을 이렇게 짧게 만든 거냐.
왜 내가 사랑하는 건 자꾸 뺏기는 기분인 거냐.
가을아—
조금만 더 길게 머물러주렴.
내가 니 사랑한데이.
부질없이 부여잡아본다.
“짧아지는 가을을 한탄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부지런히 가을을 누리기로 했다.”
지난해 어딘가에 적어둔 두 줄.
올해도 슬프게 유효하다.
왜 이렇게 뭐든,
피고 지는 건 순간인 걸까.
씁쓸해지게.
가을 하늘은 오늘, 파랗고 높다.
구름도 깨끗하게 잘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