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른이 되는 과정은
내가 혹시나 누구에게든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좌절을
꽤 적지 않게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한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차가 늘어나면 주워담은 노하우들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망상을 접은지 오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버리는 건 꽤 어려웠다.
아직까지 나의 영원한 스승이 되어주시는 한 선배는,
내가 그 분을 너무 존경하고 감사해하고 있다는 고백을 했을 때
무심코 바라보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를 스쳐갔던 후배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네가 얘기한 것처럼 내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면
지금 내 주위에 사람이 아주 많겠지.
그런데 유독 네가 그렇게 나를 따르고 좋게 봐주는 것을 보면
내가 괜찮은걸까, 네가 괜찮은걸까?"
요즘은 그 분의 말씀이 유독 되새겨진다.
그때는 그냥 나를 칭찬해주고, 또 고맙다는 말을 멋쩍어서 에둘러서 표현하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렇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알려줬던 그 수많은 인연들을 겪고 난 뒤에,
그저 허망하게 나오는 너털웃음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이고, 또 성장한 사람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여전히 모자르고, 멋대가리 없고, 어리디 어린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는 사람이다.
입 밖으로 내뱉고 인정하고 그러면서 성숙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남들을 통해서 그걸 또 다시 인정하게 되는게 나에게는 참 고통이 된다.
나쁜 사람들은 피하면 되는데, 욕하면 되는데
나를 나쁜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외면하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건
그 역시 또 하나의 괴롭힘이나 나쁜 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는 속시원히 얘기도 하고 나를 그렇게 치부한 상대를 욕하기도 하라는데
그러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될까봐, 징징거리고, 내 입장만 강조하며
무턱대고 상대방을 비난하게 될까봐, 사실은 그게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들어주는 사람들의 응원과 동조에 취해
정말 무조건 상대방의 실수인 것처럼 믿어버리게 될까봐..
그래서 차라리 내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타인의 판단을 일부는 인정하고
또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쁜 사람이지 않으려는 변명이나 발버둥보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줬다는 것을 민망하고 불편하지만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변명도 하고싶고
하소연도 하고 싶은데
이미 괴롭게 만든 사람으로서는 그마저도 자격이 없으니
어떻게든 미안하다고 응수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이불킥은 예정된 결말이지만..
그래도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