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타임즈> 칼럼 기고문
1년에 책을 백 권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달에 8.3권씩 읽으면 1년에 백 권을 읽을 수 있다.
일주일에 2권을 꾸준히 읽다가 어느 순간 내키면 3권을 읽으면 된다.
일주일에 400장 분량의 책을 2권 읽는다고 하면 800장이니까 하루에 115장 정도만 읽으면 된다.
한 장을 읽는데 넉넉잡아 1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2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어떤가? 간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절대 1년에 백 권을 읽을 수 없다. 1년은 고사하고 10일도 그런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미리 고백하자면 나도 1년에 백 권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심지어 그런 목표를 가질 생각조차 없다.
나는 보통 1년에 70~8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그런데 내 주변에 진짜로 1년에 책을 백 권 이상 읽는 분이 있다. 그 분에게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제가 맞춰볼까요?”라고 했더니 피식 소리를 내었는데,
결국 내가 한 번에 맞추는 걸 보고 그 날 술을 샀다. 그러니 나도 비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보자.
독서를 이야기할 때 보통 '시간'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먼저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고 반복되는 시간의 투입을 통해 습관을 만들라고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독서는 습관이나 시간보다 ‘책을 읽는 목적’과 ‘책을 읽으면서 누적된 경험’이 훨씬
더 필요하다.
습관을 만들겠다는 건 '목표'에 가깝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건 '목적'에 가깝다.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무려 백 권을 읽겠는가. 내 경우 책을 읽는 목적은 두 가지다.
업무에 당장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 그리고 업무랑 당장의 연관성은 없지만 영감을 얻기 위해.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누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백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할 때 백 권의 책 내용이
모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동일한 분야에 대한 책이라면 일부 겹치는 구간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책 읽기’ 같은 목표를 세우지 말고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가볍게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동일한 주제에 대한 책을 2~3권 봐야지 정도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환율’에 대한 책을 3권 본다고 해보자. 처음 보는 책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400장 분량의 책이라고 하면 앞의 200장 정도는 그래도 꾸역꾸역 집중하다가 다음 200장은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후루룩 넘기듯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게는 다음 책이 있으니까.
그렇게 2번째 책을 보면 처음 내용들은 후루룩 또 지나게 된다.
첫 번째 책을 볼 때 앞부분은 그래도 집중을 했으니까. 동일한 주제로 쓰여진 책이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두 번째 책을 보고 나면 세번째 책은 정말 시간이 짧아진다.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책들은 그렇게 보면서 권수를 채울 수 있다고 쳐도, 소설책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할 것 같은데, 맞다. 소설책은 동일한 주제로 3편을 보는 꼼수를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소설책도 읽다 보면 확실히 속도가 빨라진다. 내가 한창 무협지에 빠져 있을 때는 책을 읽는 속도가 가히 경공술의 경지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내 스스로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다. 먼저, 다양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책을 읽는다. 물론 서평을 써야 한다. 그것도 2주 이내에.
나는 가끔 일이 한가해지면 서평을 제공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신청하거나 개인 메일을 통해 요청 받은
책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읽는다. 마지막 방법은 직접 구입해서 읽는 방법이다.
그리고 읽은 책들 중에서 소장하고 싶거나 반복해서 볼 필요가 있겠다 싶은 책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중고 판매를 한다. 그래서 내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살아남은 책들이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방법, 역시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책을 보기 위해서는 목적이 필요하며, 같은 주제의 책들을 여러 권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구해 읽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간단한 게 비법이다.
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지 않는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놓고 세월을 보내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왜, 좀 그러면 어때서. 다른 제품들은 다 가치 소비라며. 총균쇠에서 총만 읽고 덮으면 좀 어때서.
읽었는데 기억 안나는 게 뭐!
책을 읽는 행동을 성스럽게 보면서도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특색이 없다고 생각하며 회사에서 업무 관련 서적을 읽고 있으면 바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꽤 많은 회사들이 복지로 도서구입 비용을 지원한다. 그것도 업무 관련 책은 구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만 이상한가?
1년에 적어도 70권 이상의 책을 보는 사람으로서 단언하 건대, 이 세상에 업무와 무관한 책은 없다.
만화책도 잡지도, 소설책이나 자기계발서도 모든 업무에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업무와 관련 있는 책은 회사가 알아서 사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업무와 관련이 있는 책을 회사 밖에서 봐야한다면 야근/외근 수당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업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회사에서 책을 읽는 행동은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개인을 위한 것이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말씀, 회사를 키우는 사람은 대부분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또 직접적으로 업무에 영감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더 많이 얻게 된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이다.
"삼국지를 10번 읽으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돌던 때가 있었다. 데이터를 공부하면서 알았다. 서로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두 데이터가 우연히 통계적으로 상관성을 드러냈다고 해서 무작정 연관 짓는 건 바보짓이라는 것을.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누구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이 영감을 주든 그렇지 않건 그게 책을 읽는 목적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는 소스가 될 필요는 없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그냥 그 책 중에서 "내키는" 부분을 다 읽었다는 기분이면 될 것을.
책을 사 놓고 꼭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책을 갖고 싶어서 샀다면, 그리고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고 기분이 좋다면 당신은 이미 책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데, 그럴 생각이 딱히 없으면서 100권의 책을 읽는 방법이 궁금했던 당신도 이미 더욱 훌륭하다. 되는대로 보고 내키는 만큼 읽고 덮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