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봐주세요. 직장생활하면서 거들먹거릴 때가 이런 자리밖에 없거든요
회사 생활을 하는 중에 내가 가장 건방지게 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면접을 진행하는 순간이다.
감히 누군가의 당락을 결정하는 그 순간에, 나는 참 건방져진다.
아무리 면접은,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자리"라고 읊고 다녀도
나에게 면접관으로 앉아있는 그 순간은
마치 예비군복을 입고 있는 순간과 같다.
안 그러려고 해도 꽤 껄렁해진다.
그럴때는 젠장, 웃음도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빅데이터는 뭐라고 생각하세요?"나
"이럴 경우 00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따위의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면접을 보러 온 분도 나는 달라요라는 인상을 주려고 할테지만
면접을 진행하는 나도 나도 달라요라는 인상을 주고 싶으니까.
한 때 압박면접이라는 게 유행을 타기도 했던 것 같은데
애초에 신입사원에게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결정을 맡기는 회사 자체가 이상한 것이며,
그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이라도 그런 상황이되면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압박이 들어갔을 때에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 실제 뽑으면 업무에서 실수를 해도 당당하다. 막 혼을 내도 쫄지도 않는다.
쫄지 않으면 더 열 받는다..
과장이 뭐라든 부장이 뭐라든 아주 당당하고
그 당당함에 대한 화살은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한다.
내가 진급할 때 만약 면접을 본다면,
그래서 "신입사원이 개길때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압박면접을 본다면.
나는 분명 탈락할 것이다...
현업에서 애초에 감당 못할거면 면접에서 압박 따위 하지 않는 게 좋다. ㅋ
그럼에도 나는 솔직히 그 자리가 좋다. 나름 재미도 있다.
우선 누군가랑 대화할 때 눈치를 가장 적게 보는 자리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내가 유일하게 건방져질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내가 20대와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다.
마치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면접에 되고 안되고는 취향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들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면접관으로 들어가면
우습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 말에 웃어줄지, 나랑 합이 잘 맞을지 등을 본다.
너무 잘 난 사람은 부담스럽고, 너무 까칠해 보이면 내 바닥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면접을 볼 때 떨어지면 나와 취향이 맞지 않았구나 생각하면 그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면접관도 퇴짜를 많이 맞는다.
이미 그 사람을 딱 결정해 놓고 "다음주에 연락하지 뭐.."라고 면접이 끝나고 나서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건방을 떠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90%는 퇴짜를 맞는다.
심지어 회사 이름을 얘기했을 때 상대방이 기억도 잘 못한다.
괜찮은 사람은 누가 봐도 괜찮은거니까.
면접 잘보는 팁을 알려주는 영상을 우연찮게 보거나
아니면 실전면접을 연습하는 영상, 기록들을 언제 한 번 봤는데
"글쎄...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몇 백 명, 몇 천 명의 이력서를 검토해야하는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고
인사과에 있지도 않아서 이런 허무맹랑한 정보를 흩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끔 보는 면접에서는 그냥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좋다.
더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좋다.
그리고 살짝 아픔도 있고 넘어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좋다.
면접, 편하게 보세요.
가장 중요한 건 면접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안 다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