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나는 항상 글을 쓰는 모습에 대한 묘한 동경같은 게 있다.
데이터를 보고서로 풀어내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보면
매 순간 꽤 자주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보고서는 아무리 내가 하고싶은 말을 담더라도 항상 모자름이 있다.
실시간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개입도 많고
한정된 시간도 있고
내 의견과 다른 데이터를 풀어내야하는 과정이 있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날때는 가끔 이 곳 저 곳에
글이라고 할만한 것도 못되는 글자들을 써 내려가는데 그냥 그런 시간이 재미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단상이라고 여겨서 온라인 메모장을 활용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드물고, 또 다시 보게 되지 않은 메모들을 발견하면
문득 죄책감이 들어서, 내가 성실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 곳 저 곳의 공간을 좀 긴 메모장이라 생각하고 글을 쓴다.
이 곳 저 곳이라고 하는 이유는,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블로그가 몇 개 있어서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브런치에 쓸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다가 일단 적어보기로 했다.
1. 오롯이 책들만 가득한 서점같다.
블로그가 멀티플렉스라면, 브런치는 단일 매장 같다.
디자인 자체에서 오는 간결함이 좋다. 마치 하얀 백지 위에 글을 쓰는 느낌.
2. 브런치라는 이름이 좋다.
나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능의 직관성보다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방향인지 알 듯한
나만의 생각을 더해볼 수 있는 '이름'이 좋다. 브런치라는 단어에서 오는 Identity가 느껴져서 좋다.
3. 비슷한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 좋다.
육아, IT, 비즈니스, 취미.. 등 개인의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는 게 좋다. 그래서 왠지 브런치의 조회수 1명은 여느 블로그의 조회수 10명 이상이 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글을 좋아하다보니 내용의 정보성, 신뢰성 등의 의미부여보다 그 사람의 글투나 생각에 더 반하게 된다.
4. 실제로 출판하지 않아도, 몇 권의 책을 가질 수 있다.
쓴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지 않더라도, 내가 쓴 글 몇 개를 간단하게 브런치북으로 묶어 놓거나
매거진으로 발행하면 마치 책을 출판한 것 같은 간접 경험을 준다.
테크닉 적으로는 그리 큰 기술이 아닐진데, 이런 감성을 전달해주는 건 참 좋은 기능같다.
5. 광고 없는 플랫폼 오랜만이다.
내가 못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브런치에는 광고라고 느껴질만한, 뻔한 콘텐츠가 많이 없는 것 같다.
있어도 그렇게 많이 오염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은 대중들이 더 많은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플랫폼, 글을 나누는 공간이 된다.
6. 태그를 많이 달지 않아서 좋다.
온라인 상에 글을 쓸 때면 나도 모르게 항상 Tag를 최대한 많이 다는 버릇이 있다.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좀 더 나은 Tag를 찾아 달고 있는 나를 보면 관종인가 .... 싶은데
브런치에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하게 된다.
7. 개인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글을 쓰고 혹 출판으로 이어지기도하는 플랫폼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실명을 공개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내가 쓴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매번 보는데 몇 몇 분은 이름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왠지 정말 온라인 상으로 맺어진 이웃같은 느낌이 든다.
(근데 왜 저는 Maven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었을까요..)
8. 사람들이 참 글을 진정성있게 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앞서 광고도 없고 신뢰감 있는 글들이라고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있으면, 시집의 장문 버전을 읽고 있는 것 같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시'가 아니라
시처럼 유려하지만, 꽤 쉬운 표현으로 일상을 얘기하고, 때로는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
또 글쓴이의 생각을 유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덤덤이 받아들이고 있는 느낌.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9. 이미지가 난무하지 않아서 좋다.
얼마전에 블로그 고수가 쓴 '블로그 하는 법(제목 아님)'을 담은 책을 한 권 봤는데 거기 그런 훈수들이 있다.
너무 글만 쓰면 읽는 사람이 금방 떠난다. 적당한 이미지를 넣어서 시선을 잡아둬라.
글자는 최대한 간결하게 써야하며, 전달할 수 있는 정보를 담아야 한다....
비단 블로그 뿐만 아니라, 유튜브 성공을 훈수하는 책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만의 법칙이 있다.
내용보다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의도가 느껴지는 글들보다
이렇게 책같이 덤덤하게 풀어내는 글들이 더 잘 읽힌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통하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이미 그런 법칙들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시기가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0. 별로 보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이것도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조회수를 보면 그냥 딱 적당한 느낌이다. 익숙한 사람들이 늘 감사하게
방문해주시고 글을 읽어주셔서 늘 적당한 조회수와 공감수를 기록한다.
그러니 글을 쓰는데 별로 부담이 없다. 글을 쓰다가 멈춘 채 발행을 해도, 간혹 거들먹거리는 글을 써도.
또 간혹 다른 사람의 생각에 어긋나는 글을 써도 모두가 그러려니하고 보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10가지가 되었든, 15가지가 되었든
어차피 비슷한 얘기들이 나오기는 할 것 같다. ㅋㅋ
글을 쓰면 그 글을 다시보지 않아도 내 머릿속 생각을 정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글을 쓰고나면, 그 생각을 일단락짓고 파생되거나 변형된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생각을 덜어내기에 참 좋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