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 가쿠빈
술은 잘 못하지만 하이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이 시키는 술 이름 같지 않은 그 술을 마셔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동네에 있는 양갈비 집에 갔다. 보통은 칭따오를 마셨겠지만 그날 따라 하이볼이 눈에 들어와 호기롭게 한 잔을 주문했다. 레몬의 상큼함이 술맛을 살짝 덮어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반해버렸다. 아니 술이 이렇게 맛있다니! 아내와 양갈비 한 점에 하이볼 한 모금을 마시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하이볼에 대해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보통은 산토리 가쿠빈이라는 위스키를 많이 사용하고 만드는 법도 간단했다. 그날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 다음 주엔가 세계주류점에 전화를 해 재고 확인을 하고 산토리 가쿠빈을 사러 갔다. 가격은 4만원 후반대였던거 같다. 하이볼의 여운이 강렬하게 남아있었지만 그 돈을 내고 사기에는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어 일단 후퇴. 그렇게 하이볼을 집에서 만들어 마시려는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이나 드럭스토어에서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회사에서 도쿄로 워크샵을 가게 돼 기회를 놓치지 않고 편의점에서 산토리 가쿠빈을 사왔다. 1,300엔 정도의 말도 안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렇게 고이 모셔온 산토리 위스키는 토닉 워터와 레몬 얼음을 가득 넣어 마시고 있다. 포인트는 술맛을 최소화 하는 것,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우리 부부 입맛에 딱 맞는 황금비율을 찾아 냈는데 한컵 분량의 토닉워터에 위스키 병 뚜껑 분량의 술을 넣으면 기가막히게 맛이 좋았다. 누군가는 그럴거면 술을 뭐하러 마시냐며 이해를 못하겠지만 내가 행복하니 됐지 뭐. 더군다나 냉장고에 레몬이 구비되어 있는 삶이 라니!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가끔 술집 앞을 지나다 산토리 하이볼을 8~9천원에 팔고 있는 걸 보는데 그걸 보면 왠지 승자가 된 기분이랄까 미소가 새어나온다. 3월에 사온 700ml 산토리 위스키는 홀짝 홀짝 마시다보니 5월이 지나는 지금 반병 정도 남았다. 아...한병 더 사올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