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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Apr 16. 2023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 아버지라는 인간의 책무








그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는 것을 자존심으로 여겼다.
감정같은 것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손수건을 덮어 놓는 거야.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가. 자녀를 위해 개인적인 욕망은 잠시 접어두고, 혼자라면 피해 갈 수 있는 굴욕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부모는 언제나 거룩하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부모는 자녀가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바보같이 안정만을 추구하는 모습, 왜 저렇게 짜증 내면서 말하나 싶은 언어 표현들. 자식을 대할 때 보이는 부모라는 책임과 그 안쪽에 자리 잡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부모라는 존재는 단편적이지 않아서 일방적인 동정이나 안쓰러움을 보낼 대상이 아니다.



아무데서고 마주할 수 있는 익명의 존재들은 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힘이나 굴욕의 징표를 지니고 있었고, 바로 이들에게서 아버지의 조건을, 잊어버린 실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시민의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그는 넉넉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 조금이라도 빨리 일손을 돕기 위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여러 일을 전전한다. 그가 소유한 소시민의 조건은 일종의 본질적인 결함이라고 부를만하다. 카페를 운영하며 형편이 조금 나아져도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뜻 모를 굴욕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자식에게 더 많은 세상을 안겨주지 못해서 느끼는 열등감, 그것을 완벽히 제어할 수 없는 통제력.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는 보편적인 아버지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관계에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위대하다가, 개인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 신성을 잃는다.



그는 내가 결국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지갑에 딸의 초등 교원 사범 학교 입학시험 결과를 넣어두고 다니는 아버지가 딸의 실패를 간절히 바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질투, 열등감에 대한 표현이 등장한다. 할아버지의 일거리를 도와야 했던 아버지는 끝내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다. 그는 농가의 허드렛일을 전전하다가 군인으로, 직공으로, 정유 공장의 근로자로, 소시민이자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딸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아버지는 힘 있는 인물을 만났을 때 똑똑하게 처신하려 한다. 자신이 소유한 열등감을 최대한 숨기는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는데, 어쩌면 딸의 계층 이동이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문득 <나도 이제는 정말 부르주아 여자가 다 되었군>,
그리고 <이젠 너무 늦었어>라는 생각이 스쳤다. 경악스러웠다.



아니 에르노에게 아버지는 프롤레탈리아라는 저편에서 부르주아라는 자리로 그녀를 옮겨주는 뱃사공이다. 하지만 그 뱃사공은 계층을 옮겨주는 역할을 할지언정 다른 세계에 직접 발을 들이지는 못한다. 어쩌면 둘은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책이나 음악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예순다섯부터 연금을 받을 생각에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그는 부르주아와 결혼한 딸이 사위와 함께 찾아오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는 것을 자존심으로 여긴다. 그녀에게 또 하나의 배경에 불과한 세계에 그녀의 아버지가 머문다. 두 세계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침묵을, 그 반대편에 위치한 세계에 대한 선망과 질투를, 질투하는 세계에 그녀의 딸이 속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그러한 아버지가, 그녀와 반대되는 세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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