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얼죽아가 되었을까?
나는 요즘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PMP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을 들으러 경복궁 근처 한국생산성본부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덕분에(?) 아침 러닝을 못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버스를 타고 서울시청에서 하차를 하면 운동삼아 경복궁까지 걷고 있다. 서울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던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면서 서울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다시 서울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피어오름을 느끼며 출근길에 서울의 랜드마크인 서울 시청과 청계천, 광화문을 거처 경복궁까지 걷는 동안에는 이어폰도 해제한다. 서울의 활기와 계절의 상쾌함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아침마다 서울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매일 데자뷰를 겪는다. 스타벅스를 분명 지나쳐 왔는데 또 내 앞에 나타나는 스타벅스를 보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지나치자마자 또 나타나는 스타벅스를 보며 우리는 스타벅스 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실제로 왜 이렇게 스타벅스가 많이 보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지도 앱으로 확인하니, 아침 출근길 2km 경로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스타벅스가 10개가 넘는다. 수많은 스타벅스를 지나치며 또 ‘아아’를 들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을 지나치며 문득 한국인은 왜 얼죽아가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 역시 얼죽아다. 강추위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커피를 안 마셨으면 안 마셨지, 따뜻한 커피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커피에 관한 글을 쓰려니 스무 살 시절 갓 대학생이 되어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호기롭게 사 먹었던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기에 두어 달에 한 번씩 본가에 내려가곤 했는데, 어느날 집에 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호기롭게 들어갔던 카페. ‘카페’라는 곳을 처음 가봤어서 커피 종류도 아예 몰랐던 나는 제일 위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자연스러운 척을 하며) 그런데 받아서 처음 아메리카노의 맛을 보고는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기억으로는 커피에서 담뱃재 맛이 났던 것.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내가 그렇게 느낀 건 ‘내려먹는’ 커피의 맛을 처음 느꼈기 때문 아닐까. 지금은 물처럼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그땐 왜 그렇게 썼는지 글을 쓰다 보니 그 맛이 문득 기억이 났다.
우리는 커피를 왜 마실까? 한국인의 커피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소개팅을 할 때도, 거래처 만남 혹은 회의 같은 업무의 일환으로, 공부하다 지쳐 카페인 섭취를 위해서, 또는 그냥. 우리는 오만가지 이유로 커피를 마시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최소 하루에 두 잔 이상은 마신다. 커피를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에 역시나 제일 강력한 이유는 카페인 섭취.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바쁘게 산다. 학생, 직장인, 사업가, 전문직, 전업주부, 심지어 백수까지. 하루동안 우리가 써야 할 에너지는 우리가 가진 것에 비하면 부족할 수준으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산다. 나 역시 그렇다. 하루종일 바쁜 와중에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자주 있다. 그런 순간에 몸이 처지고 나태해지는 것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카페인을 찾게 되고 그 카페인을 최대한 한국인답게 마시려면 ‘차갑게’, ‘빠르게’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DNA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빨리빨리’가 한국인을 그토록 ‘아아’에 중독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따뜻한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인생을 사는 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아아에 심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