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2023 상반기 오로다데이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PDS 다이어리를 통해 인생이 조금씩 바뀌는 느낌이 들더니, 결국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를 전하는 스피치까지 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6살 꼬맹이 시절, 뭣도 모르던 그 시절에 다녔던 웅변학원에서 했던 발표를 끝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로 발표를 한다는 건 인생 계획에 없었던 이벤트이다. 이 특별한 경험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글로써 이 느낌을 간직하고자 한다.
나는 올해 신영준 박사께서 진행하시는 멘토링 프로젝트 4기의 멤버로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PDS 다이어리라는 툴로 인생을 좀 더 진하게 살아보자고 마음먹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실 작년에 하지 못한 '조기진급'의 여파. 그때 느꼈던 나에 대한 깊은 빡침(아직도 회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으로부터 시작된 '열심히 살기'의 에너지가 봄바람이 불고 벚꽃과 함께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와중에 감사하게도 멘토링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번 오로다데이에서 내 이야기를 스피치를 통해 공유해 주면 좋겠다고 상상스퀘어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그 전화를 받고 하루정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몇백 명 앞에서 내가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 무슨 얘기를 하지? 별것도 아닌 내 얘기를 사람들이 공감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발표에 대한 걱정보다 이런 기회가 왔음에도 도전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그 이후에 느껴질 후회가 더 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단 해보겠다고 지르고 내가 자주 하는 말을 또 한 번 외쳤다.
하면 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제의 내 발표는 내가 상상했던 그림을 거의 90% 이상은 구현해 냈다.
나는 인생을 좀 대충 살고 싶다. 단어 그 자체로 대충이 아니라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어서 타인으로 하여금 '저 사람은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잘하지?'라고 느껴지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쿨 하잖아!) 그래서 이번 스피치도 기왕에 하는 거 정말 잘하고 싶었고 추가로 여기에 독서의 힘을 한번 증명해보고 싶었다.
올해 책을 많이 읽으면서 뇌과학이 정말 재밌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뇌과학에서 처음 배운 게 '무의식'의 힘. 우리가 하는 선택, 행동, 말의 대부분은 사실 의식적인 부분보다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들이 비중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하는 생각이 상상인지 실제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목표 100번 외치기, 명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목표를 생각하기, 끌어당김의 법칙, 심지어 종교까지.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끊임없이 목표를 각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원리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의 힘을 이번 스피치를 통해 증명해보고 싶었다.
발표 내용을 내 무의식에 통째로 입력시키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무의식이 작동할 때 입으로 중얼중얼 연습을 하면 이 발표 내용도 내 무의식에 각인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운전, 걷기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인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의 지배 영역에 있다는 것을 책에서 알게 되었고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차를 가지고 다니면 하루 왕복 2시간을 운전할 수 있으니 그 시간 동안 천천히 내 발표를 무의식에 입력했다. 또 셔틀버스를 타는 날에도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걸으면서 중얼중얼, 퇴근하고 올 때도 중얼중얼을 반복하며 연습했다.
이렇게 연습을 반복하니 10분이 넘는 분량의 대본이 거의 통째로 외워졌고, PPT를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각 장의 그림이 떠올랐다. 이 정도가 되니 발표할 때도 신기한 경험을 한다. 발표 내용보다는 내 몸의 움직임, 시선, 중간중간 쓸데없는 미사여구 쓰지 않기 등에 집중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표자처럼 보이는데 신경을 더 쓸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ㅋㅋ)
이거 진짜 신기한 경험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께서도 나와 비슷한 이벤트가 있다면 참고하셔서 무의식에 각인! 해보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인간은 자신이 그린 대로 살아간다. 잊지 못할 하루가 될 스피치 현장을 매일매일 생생하게 상상을 했다.
단상에 올라가서 무대 중앙으로 당당히 걸어 나가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떨지 않고 또박또박 내가 연습한 대로 모든 것을 쏟아낸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별거 아니던데?"라고 와이프한테 으스대는 내 모습까지.
상상했던 대로 해냈다.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점은 행사장에 도착해서 다른 스피쳐분들과 처음 만나자마자 그분들이 내게 해줬던 말씀. '정훈님은 너무 편해 보이고 여유가 넘쳐 보인다'는 그 말씀에 '오케이, 됐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신기했다. 이게 된다고??
우선 먼저 나 자신에게 정말 감사하다. 스피치 제안을 받고 피하지 않은 점, 책에서 읽은 것들을 토대로 준비하고 또 실전 경험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점은 나 자신에게 정말 칭찬한다. 이런 경험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구에 근본이 되어 내 인생은 무조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굳게 믿는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처음 작성했던 스피치 대본을 발표 이후에 다시 보니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 그 형편없는 수준의 발표 대본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신 상상스퀘어 윤수은 매니저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본 초안 피드백을 받으면서 거의 뼈를 발골하다시피 내 안일한 태도에 대한 깨달음을 하게 만들어주셨기에 제대로 다시 준비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PPT와 대본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어주셔서 발표를 좀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발버둥 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나의 아내, 선아에게 정말 감사하다. 사실 나는 발표를 좀 잘한다. 아니 잘했었다. 근자감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발표에 대해 자신감은 확실했다. 적어도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을 앞둔 무렵에 엄마가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고,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힘들게 취업을 준비해서 그 해 여름방학에 지금 일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내 브런치 글 중, <내가 칼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참조) 인턴쉽 기간 동안 엄마의 치료 마지막인 골수이식에 공여자로 내가 참여를 했지만 끝내 엄마는 회복을 못하셨고 인턴쉽을 끝내자마자 돌아가셨다. 그렇게 힘든 여름을 보내고 정직원 합격 통보를 받아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발표가 잘 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뿌리가 뽑히는 느낌이다. 그 때문인지 그냥 발표가 잘 안 됐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심지어 대규모 회의와 윗선 보고를 밥먹듯이 하는 PM 조직에 와서도 발표에 대한 불편함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스피치를 하면서 신기하게 그 불편함과 발표에 대해 느꼈던 막연했던 두려움의 벽이 낮아지는 게 실시간으로 체감 되었다는 것. 긴장이 되는 와중에 앞에 앉아있는 아내를 한 번씩 볼 때마다 긴장감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길래 다른 분들을 보며 발표를 이어나가면서 긴장감이 오르는 느낌이 들면 다시 아내 한번 보고 그 긴장을 해소하기를 반복하며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내 삶의 지침 같았던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뿌리가 뽑힌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지금은 아내에게 많이 의지하고 살고 있지만 그게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어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면서 내가 진짜 한 걸음 도약하려고 힘쓸 때 아내의 존재 자체만으로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나를 지지해 주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팔자에도 없는 독박 육아를 해내는 와이프에게 새삼 감사함을 또 한 번 느낀다. 육아 그 자체로도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지만 그 와중에 철부지 남편의 성화에 독서, 운동 등 자기 계발을 틈틈이 하면서 또 남편 잔소리 들어가며 제 인생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정선아 씨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