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생의 2025 하반기 취준 후기
작년 하반기는 막학기 16학점/졸업연구 및 논문/취업 준비라는 큰 과제 3가지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까지 겹쳐 역대급으로 다난했던 것 같다. 덕분에 이래저래 할 말이 많지만, 우선 이번 글에서는 내가 직접 피부로 느낀 취준의 어려움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취준 면에서 봤을 때 나는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하긴 했다. 공대를 졸업했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에, 마케팅/영업/리서치 등 문과 계열 직무로만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의 장단점을 먼저 대략적으로 파악한 후에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했었다. 취업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회사에 나를 세일즈하는 것인데, 우선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점
서울대학교라는 좋은 학벌
2번의 인턴 경험과 그에 따른 나름의 성과(블로그 방문자 수 220배 성장, 국내 최초 양자컴퓨팅 ETF 상장 등)
영어 실력(OPIC AL, TOEIC 975)
단점
상당히 낮은 학점(면접 갈 때마다 학점이 낮다고 언급될 정도)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로의 지원
공모전 수상경력, 대외활동, 학회 등 인턴 외 관련 활동 전무
하지만 취준이 어려운 점은 정량적인 비교 기준이 없다는 것, 그리고 관련해서 정보가 정말정말정말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동기들이 거의 다 대학원에 가기도 했고, 나같이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지원하는 사례가 주위에 없다 보니, 더더욱 내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초기에 썼던 서류 결과들이 나오기 전에는 나의 장점들이 단점을 상쇄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해 다소 낙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추석 연휴 전 서류 발표 결과에서 1승 11패를 하면서 주제 파악을 하게 되었다.(심지어 저 하나도 ai역량검사에서 떨어졌다..) 아직 탈락에 내성이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자소서를 개선해 나가며 계속 지원을 했고, 그 결과 8승 19패로 후반에 나름 선방(?)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코딩테스트를 보라고 하는 직무 하나를 면접 포기하고, ai역량검사/인적성검사에서 하나씩 떨어지고 나니 이제 내가 가진 카드는 5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꽤나 충격적이었던.. 서류 결과
1차 면접은 첫 두 개를 탈락으로 시작했지만, 이때 면접 준비 과정과 다대다 면접 전략에 대해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oo카드 면접에서는 회사의 제품/상품/마케팅 등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꼈고, oo증권 면접에서는 다대다 면접(무려 6대6이었음)에서는 앞 사람이 말하는 것에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면접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남은 3개의 면접에서는 합격해 최종까지 갈 수 있었다.
최종 면접은 공교롭게도 3개 중에 2개가 같은 날짜에 진행되었다. 심지어 학교 시험 1개도 같은 날에 있어, 나는 '여의도에서 면접-학교에서 시험-판교에서 면접'이라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도 시간대가 겹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종 면접 3개를 보고 나서 내 생각은 '진짜 모르겠다.'와 '그래도 이게 나의 최선이다.'였던 것 같다. 면접이란 것이 애초에 정답도 없고, 합격이나 탈락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첫 3개 중 2개의 결과가 탈락으로 발표되고, 남은 1개의 결과 발표까지 이틀이 남아 있었을 때에는 멘탈이 남아나지 않아 더더욱 쇼츠/게임 등으로 어떻게든 시간을 떼우고자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마지막 남은 회사가 나를 합격시켜 줘서,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해보면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택했기 때문에, 나는 면접장에서 끊임없이 의심받아왔다. 어느 면접에서건 나에게 오는 첫 번째 질문은, '공대생인데 왜 이쪽으로 오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이었고,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내가 정말 이 분야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다행히 취업을 위해 급조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상태에서 오랜 시간 고민해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면접관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취준은 성인이 되고 난 후의 내 삶의 자취를 평가받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 20대 초반에 학교/과만을 믿고 생각 없이 살았던 것이 발목을 잡아 많은 탈락을 경험했다. 다만 나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 후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분야로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1개라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글쓰기라는 취미에 뛰어든 과거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글을 쓰며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하고, 생각을 정리했던 것이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