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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Jul 30. 2022

'무색무취'였던 사람

나비는 향기 없는 꽃에는 앉지 않는다

 독서를 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긴 소설책을 한 호흡에 다 읽었으며, 부모님을 졸라서 책도 많이 사고, 또 빌렸었다. 그리고 그걸 또 다 읽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들 중 일부는 아직도 집에 보관되어 있는데, 볼 때마다 '저렇게 두꺼운 책을 어떻게 다 읽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커가면서 주변 상황이 급변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게 되었는데, 이때 깨달았다. 입시 중심의 사회엔 독서가 설 자리가 없음을.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공부만이 강요되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건 여전했으나, 날 책상에 앉게 하던 건 이상 자유 의지가 아니라 공부라도 잘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압박감이었다. 결국 재수까지 해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지만, 경쟁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찌든 나에게 더 이상 책을 좋아하던 순수한 소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 입시'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잃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뭘 하면 잘하는지, 어떤 걸 재미있어하는지보단 항상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생각해왔던 것이다. 명문대생이 되고 싶었던 것도 어찌 보면 내 미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틀에 내 몸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명문대에 가면 나도 뉴스에 나오는 명문대생들처럼 '똑똑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명문대 학생증은 날 진화시켜주는 티켓이 아니었다.  오히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독에 가까웠다. 남들이 끊임없이 발전을 위해 변화를 시도할 때, '난 예전에 이런 걸 해냈으니 괜찮아.'라고 합리화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자신감도 떨어졌고, 내 딴엔 열심히 했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자 공부 의지도 차츰 사라져 갔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성적이 잘 나올 리 만무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23살이 되어서도 명문대 학생증 말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그야말로 '무색무취'인 사람이 되었고, 도망치듯이 입대를 선택했다.



  군대야 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다. 최전방이었던 데다가 계급이 전부인,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은 나와 정말 맞지 않았다. '너무 힘들다.', '여기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같은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본인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나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부대에 있는 조그만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컨테이너에 책장 몇 개 넣어놓은 조악한 도서관이었지만, 내게 중요했던 건 그 안에 있는 책들이었다.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시작했다.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다 보니 속도도 붙었고, 어떻게 읽어야 내용이 기억에 잘 남는지에 대한 요령도 생겼다. 그 결과 어느덧 읽은 책이 50권이 넘었다.

2021, 2022년 도합 53권의 책을 읽었다. 21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으니 딱 1년 만에 이만큼 읽은 셈이다.


  1년에 53권. 사실 독서를 이미 습관화한 사람에게는 그리 큰 숫자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53권의 독서가 나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무색무취에서 향기를 가진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책들이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걸까. 다음 글부터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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