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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우 Nov 19. 2023

요구사항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장 잘 되는 치과와 비교해봐야 하는 이유 #2



낡은 사진관에 문을 열고 들어온 짧은 커트 머리 여자. 지난주에 찍었던 사진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짐짓 기대하는 눈치다. 들뜬 목소리가 감춰지지 않는 걸 보니.


그런데 이내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온 것 같아 다시 찍어줄 수 있냐고 물으며 겸연쩍은 듯 목소리가 잦아든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 이후에 여성이 왜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요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장면에서 여성이 자기 옆머리를 연신 앞으로 쓸어내리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본인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게끔 만들려는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 왜 이 여성은 그냥 말하지 못했을까?


“얼굴이 작아 보이게끔 찍어주세요”


물론 남자가 미용실에 가서 선뜻 “원빈처럼 부탁드려요”라고 말하기 어렵듯, 여성이 얼굴을 작아 보이게끔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는 것 역시 감추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들추듯 민망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 정문정은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즉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이 ‘노’(NO)라고 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그로 인해 결국 “알아서 해주세요”란 말을 반복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아마도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 여성 역시도 본인의 요구사항, 즉 얼굴이 작아 보이게끔 만들어달라는 구체적인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정문정의 지적대로라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착하지 않으면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그 믿음. 그것이 본인의 필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알아서 해주세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일종의 전문가에 대한 배려나 예의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객을 상대하는 전문가들은 고객이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기를 원한다. 그래야 작업물의 방향성도 결정되고 완성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것.


무작정 “알아서 해주세요”와 같은 말을 하고 맡겨두는 것은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곤혹스럽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양쪽 모두에게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의 그 여성과 같이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없다가 그저 “이상한 것 같아요…”와 같은 두루뭉술한 이유로 컴플레인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경우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소비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 헤어샵의 적지 않은 손님들이 “알아서 해주세요”란 말을 한다고 한다. 헤어디자이너들은 이렇게 두루뭉술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없는 손님들이 오히려 어렵다고 한다.


일종의 과녁 없이 활을 쏘는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활을 쏠 줄 몰라서 활을 못 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쏘아야 할지 몰라서 활을 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개원 입지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인 컨설턴트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이때 컨설턴트에게 ‘과녁 없이 활을 쏘는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선 안 된다.


이 사람이 전문가이니까, 그래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 테니까 “알아서 잘해줄 거야”라고 무작정 맡겨선 안 된다.


과녁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입지입니다. 확실한 과녁을 주고, 전문가로서 활시위를 당겨 그 과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전문가와 클라이언트와의 협력관계, 즉 파트너십이 이뤄졌을 때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돌이켜보면 가장 좋은 성과물을 냈던 경우는 소위 원장님과 ‘티키타카’가 되었던 분들이다. 호흡이라고 하지 않나. ‘원하는 것’과 ‘해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상호보완돼가는 것.


즉 클라이언트가 구체적으로 요구하면 전문가는 최대한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구체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도 비교적 구체적인 피드백이 가능하게 되어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개원 입지는 얼굴이 커 보인다며 다시 찍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반명함판 증명사진이 아니다. 증명사진이야 마음씨 좋은 사진관 아저씨가 언제든 다시 찍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원 입지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헤어샵에 가기 전 본인이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에 대해 정리하듯, 본인이 개원하고 싶은 입지 스타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리를 해두자. 그렇게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전문가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자.


이미 검증된 ‘잘 되는 치과’의 입지와 비교해보면서 정리하면 꽤 간단하게 안전한 선택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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