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는 한 번의 교정으로 바로 좋아질 수 없습니다. 최소 3번의 교정이 이루어지고 5~6교가 예삿일이 되기도 하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편집자는 왜 굳이 여러 번 교정을 거칠까요? 물론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는 게 글이라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1. 교정 회차마다 챙겨야 할 것이 따로 있다
편집자는 먼저 초고를 훑어본 다음, 교정 회차마다 우선해야 할 것을 정합니다. 가지치기를 할 때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면 문장을 세심히 다듬기보다 다른 자료와 비교 검토할 테지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조절해야 한다면 줄일 부분을 먼저 찾아가면서 교정을 진행합니다. 작가에게 원고 보충을 요청해야 할 때는 이런저런 내용을 덧붙이면 좋겠다고 메모를 달아놓습니다.
첫 번째 교정이라도 눈에 띄는 문장들은 당연히 바로잡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원고가 비로소 틀을 갖추기 때문에 첫 교정에 많은 것을 해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작가에게 원고 보충을 요청할 텐데 굳이 문장을 매우 매끄럽게 다듬는다 한들 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어차피 보충된 내용을 포함해서 다음 교정에서 다시 살펴봐야 하니까요. 그럴 때는 원고의 흐름을 살펴보는 게 우선순위가 됩니다.
2. 조판 상태에 따라 수정할 것을 쪼개야 한다
복잡한 구성의 책이라면 조판 상태에 따라 수정 사항을 나눠야 할 수도 있습니다. 조판은 인디자인을 통해 책 형태로 원고를 앉힌 것을 말합니다. 이때의 교정은 PDF나 직접 출력한 교정지로 이루어집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소가 많은 책일수록 살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조판 이후 첫 교정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노련한 디자이너라도 놓치는 게 조금은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조판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위치를 바로잡는 게 먼저다 싶으면, 문장을 살피는 건 그다음 교정이어야 합니다. 굳이 표시하더라도 수정 사항이 너무 많으면 디자이너가 놓칠 수 있어 다음 교정에서 다시 한번 표시해야 할 수도 있어요. 또한 내용이 잘 자리 잡은 이후에 살피는 게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3. 작가와의 소통에 따라 교정을 조절한다
국내 작가의 원고일 때는 첫 교정에 너무 많이 고치는 게 썩 좋지는 않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별로인가?’ 하고 작가에게 괜히 오해를 심어줄 수 있고, 작가가 교정의 흐름보다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떻게 바뀌었나만 들여다볼 수도 있어요.
때에 따라 교정 회차마다 수정할 것을 나눠 가며 진행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교정에서는 윤문 위주로 하고 다음 교정에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식입니다.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작가가 자연스레 교정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므로, ‘출판사에서 내 글을 아무 이유 없이 막 고치는 거 아니야?’ 하는 오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만약 원고 상태가 좋지 않아 첫 번째 교정부터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면 교정을 진행하기에 앞서 작가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예전에 기획안과 함께 한두 목차만 떼어내 교정 예시로 보여주면서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4. 시간이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작가들이 집필할 때 원고를 며칠 묵히고 머릿속을 비웠다가 다시 살펴보듯, 교정에서도 그러한 단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원고를 오래 붙든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매번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편집자는 교정 후에 디자이너에게 교정지를 보내는 일정으로 원고와 며칠 거리를 둡니다. 물론 그사이에 원고와 멀찍이 거리를 두는 건 어렵겠지만 나름의 효과가 있습니다.
첫 교정에서 원고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초점이 그쪽에만 맞춰집니다. 생각보다 다른 걸 잡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이후 수정을 거친 본문 교정지가 도착했을 때 비로소 알아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제야 문장을 세세하게 살피고 오탈자도 잡아내는 것이죠. 이것이 어쩌면 교정이 여러 번 이루어지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편집자는 원고가 디자이너나 작가에게 가 있는 동안 새로운 해답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검토할 때도 당연히 원고를 읽어보지만, 교정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숨은 문제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교정에서 번뜩번뜩 새로운 아이디어가 보인다면, 아마 편집자가 그사이에 다른 해답을 찾아낸 것일 수도 있어요.
커버 사진: Photo by Lindsay Henwoo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