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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May 24. 2021

마음이 엉킨 날이면 쌀국수를 먹으러 간다

복작복작했던 그때 그 시절의 쌀국수집처럼

스물넷에 비로소 쌀국수를 만났다. 사회생활의 첫해,
서울 강남 한복판의 어느 쌀국수집에서.


전날 밤의 숙취를 씻어내고자 따듯한 국물을 찾아 몰려든 점심의 직장인 무리 틈으로, 나는 쌀국수집에 발을 들였다. 뿌연 국물에 숙주를 덜고, 엄지와 검지로 레몬 조각을 꾹 누르던 손길에서는 조용히 국물로 투하하는 레몬즙만큼이나 익숙한 고요함이 번져왔다. 경건하게 준비를 마치면, 후루룩하고 쌀국수 면발이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해장하는 사람 특유의 안도하는 듯한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 그제야 나는 쌀국수야말로 진정한 해장 음식임을 깨닫는다.


그전까지 쌀국수는 나에게 낯선 음식이었다. 몇몇 이국적인 향신료가 만들어내는, 그 묘한 향이 코끝을 스치면 나는 쌀국수집 방문을 주저했다. 뭐만 잘못 먹었다 하면 체하기 일쑤인 소화기관을 타고난 탓에 어릴 적부터 음식을 가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너무’ 기름지거나 맵거나 또는 짜거나,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면 소화할 만한 음식은 엄마의 집밥밖에 없었다. 나는 심지어 겁도 많은 편이라 조금만 낯선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입안에 넣기를 거부했다. 그중 하나가 쌀국수였다. 푸릇한 고수가 떡 하니 올라와 있는 모습이, 엄마가 해준 잔치국수와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첫 회사에서는 야근이 일상이었다. 막내와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를 등에 단 나는, 손님이 그득한 쌀국수집을 무척 좋아했다. 식당을 고를 겨를 없이 쌀국수나 먹으러 가자는 상사의 이끌림에 찾은 그곳에서는 건물 유리창 안에 갇혀 보이지 않던 사람 사는 풍경이 펼쳐졌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얼굴은 상했어도 마음 한편은 막내를 위해 내어놓던 상사들에 둘러싸여 먹는 쌀국수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정규직과 계약직의 업무가 철저히 나뉘던 사무실에서 벗어나 누구나 쌀국수를 먹는 그곳에서는 설움을 덜어내고 음식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시도로만 그친 쌀국수가 본격적으로 혀에 각인되었다. 향신료와 고기 육수가 만들어낸 독특한 육수, 널따란 쌀국수 면을 따라 달려오는 아삭아삭한 숙주, 면에 찍어 먹는 매콤한 검붉은 소스가 내 마음속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Photo by Lightscape on Unsplash


쌀국수의 향내를 맡는 코와 직장인의 소담을 듣는 귀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
나의 마음과 소화 상태는 한패나 다름없었다.

보통은 마음이 불편한 날이면 온종일 체기로 고생해야 했다. 음식을 소화해낼 힘은 없지만, 몸을 움직여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피로와 무기력을 뿌리치려 입안에 들이키던 몇 잔의 커피는 위장에 틈틈이 흔적을 남겼다. 전날 한 시간이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면 커피의 양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위장의 생채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것이 회사에서 누군가 뱉어낸 가시 돋친 말 때문이라는 걸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배 속 생채기는 이윽고 무엇이든 삼키면 더부룩하게 만드는 고통의 존재가 되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를 안고 며칠을 보내야 하는 때면, 그 돌덩이가 배 속의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인지 걸러지지 못한 묵직한 마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런 날이면 쌀국수를 먹으러 가야 한다.


전날 회식의 숙취를 쌀국수로 해결하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쌀국수는 깨나 속을 잘 풀어낸다는 점이다. 고기 육수가 선사하는 묵직하고 개운한 국물과 부드러운 쌀국수 면발이 내 위장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그렇게 쌀국수는 마음이 무거운 날에 찾아 먹는 특별한 힐링 음식이 되었다. 헛헛한데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날이면 나는 으레 쌀국수를 먹었다. 보통 날이면 최애하는 양지 쌀국수를 먹었지만, 몸이 으슬으슬한 겨울날이면 닭고기 수프가 떠오르는 닭고기 쌀국수를 선택했다. 위장이 가라앉았다 싶으면 별미를 찾아 매콤한 국물과 신맛이 일품인 해산물 쌀국수를 시켰다. 식당이 문을 닫은 늦은 밤이면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쌀국수 하나를 사 들고 훌훌 걸어올 때도 있었다.


여전히 쌀쌀한 4월의 저녁,
친구와 함께 인사동의 어느 쌀국수집을 다시 찾았다.

몇 년 전 방황하던 직장인 시절의 내가 친구랑 찾아간 곳이었다. 쌀국수로 저녁을 먹으러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리던 쌀국수 맛집에는 이제 몇몇 비어 있는 테이블이 우리를 조용히 환대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그곳에서 쭈뼛쭈뼛 자리에 앉아 익숙하게 양지 쌀국수 두 개를 시켰다. 자연스레 친구와의 대화 주제는 몇 년 전 뜨끈한 국물로 몸과 마음을 녹인 그 시절로 돌아갔다.


사람과 마주 앉아 쌀국수를 기다리다 보면, 쌀국수 또한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 더욱 맛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라지 사이즈를 거뜬히 해결하던 사회 초년생이 위장과의 오랜 전쟁으로 미디움 사이즈도 겨우 끝내는 30대가 될 때까지, 쌀국수는 유난히 얹히던 인생의 숙제들을 엄마의 집밥만큼이나 훌륭히 소화했다. 쌀국수를 흡입하기 전 면발을 괜히 헤집으며, 누군가에게 마음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놓은 그때부터 그러했다. 주변의 소음은 단숨에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이는 상사가 있던 스물넷의 쌀국수집으로 나를 돌려놓았다.


쌀국수를 먹다 말고 친구와 괜히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동시에 말이 나왔다. 다음번에는 이 가게에서 줄 서서 쌀국수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복작복작했던 그때 그 시절의 쌀국수집처럼.



커버 사진: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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