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즐겨 쓰는 말에는 그 사람의역사가 담겨 있다
‘탁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탁나다’는 나의 고향의 사투리로, ‘곰팡이가 슬다’라는 표현이다. “탁났네!” 이 한마디면, 곰팡이를 갑작스레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부터 곰팡이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마음까지 한 번에 전할 수 있다. 게다가 절약적이지 않은가. 세 글자면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단, 우리 집에서만.
어릴 적부터 어딘가에 곰팡이가 잔뜩 슬면, 엄마는 “에잇, 탁나버렸네.”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녁 식탁에 올라야 할 채소에 곰팡이가 슬었을 때도 그랬고, 서랍 깊숙이 습기를 머금은 채 장렬히 전사한 옷가지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탁났네!” 하는 낮은 한탄이 엄마의 입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오면, 나는 늘 그만한 표현이 없다고 자부했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도련님마냥 “어머, 여기 곰팡이가 슬었잖아.” 하고 호들갑을 떨 때와는 거리감이 달랐다. 드라마에서는 곰팡이와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면, “탁났네!”는 거리가 좁혀지다 못해 곰팡이가 머릿속에 꽉 하고 박히는 느낌이다. 얼른 이 곰팡이를 제거해야 할 것 같은 다급함이 느껴진달까.
이러한 사정으로, 나는 “어 여기 곰팡이가 슬었네.” 하고 점잖게 감상을 전하는 서울 사람을 보면, 참견하고픈 마음을 억누르기 바빴다. 남의 말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아니야, 나름의 양심으로 애써 태연한 척하는 나도 서울에 십 년 넘게 산, 어엿한 서울 사람인데 말이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벽을 보고 그 단어를 자주 꺼내곤 했다.
겉모습을 그대로 닮아, 바스러질 것 같던 반지하 방은 햇볕 한 줌 머금지 못해 매일 벽에 곰팡이가 슬기 일쑤였다. 곰팡이가 잔뜩 달라붙은 벽지를 닦아내면서 나는 아무런 투정을 할 수 없었다. 값만 따지던 첫 부동산 계약의 실패를 씁쓸히 맛보면서, 매일 혼자 주문을 걸듯 “탁났네.”라는 말과 함께 두 손에 곰팡이 제거제와 걸레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탁나는 집’을 벗어났지만, 나름 서울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니면서도 집에서는 “에고, 탁났네.”라는 말이 끊기지 않는다. 오랜만에 집 안에 남아 있는 식재료를 확인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언제 사놨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싹이 자란 양파와 군데군데 검은 상처가 생긴 당근, 형태를 잃고 물렁물렁해진 파프리카까지. 커피포트에는 아직 쓰레기통에 가지 못한 커피 찌꺼기가 수분의 공격에 못 이겨 곰팡이로 둔갑했다.
행색은 모두 다르지만, 본모습을 잃어버린 음식의 자태를 모두 ‘탁났다’고 부르고 있다. “탁났네!” 하고 아무도 듣지 않을 한숨을 크게 내쉬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곧장 시골집에서 저녁거리를 걱정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전라도 사람 일색인 고향에는 딱히 사투리를 즐겨 쓰는 어린이가 없었다.
그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란. 사투리가 희귀한 것은 청소년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지에서 전학 온 친구뿐 아니라, 이곳이 고향인 친구도 그러했다. 고향을 이곳으로 둔 부모님 덕분에, 사투리를 들으며 자란 나는 툭 하고 사투리를 꺼냈다가 괜히 얼굴이 벌게진 적도 있었다. “아니, 탁났다는 말을 모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외갓집에서 들어봤다며 마치 사라져버린 옛말을 들은 것처럼 반가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탁나다’의 비공식 홍보대사로, 여기저기 이 단어의 경제성과 효용성을 설파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나의 혼잣말에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따금 답을 알려줄 뿐이다. 십 년이 넘는 홍보 끝에 나는 하나의 진리를 깨우쳤다. 누군가 즐겨 쓰는 말에는 그 사람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곰팡이가 슬었네.’ 하고 친절히 설명해주는 사람 곁에는, 그런 친절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역시 “탁났네!” 이 표현은 엄마한테 전해줘야 제격이다. “채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니?” 하는 잔소리가 바로 돌아올 테지만 말이다. ‘탁나다’, 그 말에는 어느 철부지 딸을 둔 젊은 엄마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역사가 담겨 있다.
커버 사진: Photo by Sachina Hob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