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담당하지 않는 나에게 동화는 이제 낯선 세계다. 웬만하면 영 마주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어렸을 적 읽은 몇 권의 동화가 나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을 때, 그마저도 떠올릴 때마다 안개처럼 흩어지기 일쑤라서, 나는 아주 드물게 동화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마음이 유난히 지쳤던 어느 날에 이 책을 만났다.
“어라, 어디서 본 듯한 그림체인데?”
노란빛 동산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그 동산을 곰 두 마리가 뛰어다니는 그림이 큼지막한 판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뒤편에는 다른 동물들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라고 넘겨버렸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낯익은 인상이 전해졌다. 딱히 설명을 보지 않았는데도, 바로 직감했다. <보노보노> 작가구나.
출처: 《황금나무숲》(한솔수북, 2021년)
<보노보노>로 유명한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의 그림으로 가득한 《황금나무숲》(이은 글, 이가라시 미키오 그림, 한솔수북, 2021년)은 황금나무숲을 살아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황금색 별똥별이 떨어지면서 황금색 싹이 돋아나 자라났다는 황금나무 주위로, 숲과 호수, 사막 등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달곰이, 곰곰이 두 곰을 시작으로, 두지 아저씨, 꼬찌, 산토 등 다양한 동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황금나무숲 동물들은 두지 아저씨만 빼놓고 아무도 황금나무숲 저 너머의 ‘어른’이라는 마을에 가보지 않은 순수한 아이로 그려진다. 신이 나면 달곰이의 연주에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고, 걱정이라는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 친구의 집에 스스럼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어떠한 계기로 황금나무숲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동물들은 그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다.
동물의 이름에서 어떤 종(種)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듯, 이 책은 동화 특유의 동글동글한 말투가 인상적이다. 쉽게 풀어쓴 것으로 보아,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마치 돌림노래처럼 몇몇 대화가 계속 이어지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편집했던 단행본에서는 만나지 못한 것으로, 읽을 때마다 신선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기본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이 책에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아마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자연의 여유로움을 선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그린이의 말에 담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이며,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세계’(7쪽)가 읽는 내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에는 커다란 글씨와 조곤조곤한 말투가 어색했지만,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랬다. 동화도 가끔 읽을 만하다는 것.
Photo by Jaime Dantas on Unsplash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녹색으로 가득한 자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이 동화에 접목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우선 그랬다. 온통 자연과 동물로 채워진 동화의 그림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으며 행복했다. 어린아이가 볼펜으로 쓱쓱 스케치를 하고, 그 안을 사인펜으로 찍찍 색칠해 놓은 것 같은 그림. 심지어 그 그림을 내가 어릴 적 즐겨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작가가 자신만의 그림체로 그려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치 그림 액자처럼 책장 앞에 가로로 세워두었다.
보노보노와 포로리와 너부리가 살던 커다랗고 한적하고 여유로운 숲속.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세 친구와 그걸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고, 어찌어찌 사건이 해결되거나 술렁술렁 넘어가고, 동물들은 편안하게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숲속. 그 풍경이 동화에 투영되면서 읽는 내내 그리움이 가득 몰려왔다. ‘어른’이라는 마을에 이미 들어섰지만 황금나무숲의 두지 아저씨처럼 현명한 해결사가 되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현실에 치이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김에 황금나무숲에 사는 달곰이처럼 뭐든 좋게좋게 넘어가 보려 한다.
“곰들은 그래. 항상 자기 멋대로 좋은 생각만 하거든.”(22쪽 중에서)
카피 사진: Photo by TOMOKO UJ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