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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Aug 14. 2021

국내 기획인가, 외서 기획인가

편집자에게 찾아오는 ‘기획’이라는 거대한 산

어느 직장인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출판 편집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편집자는 우선 업무를 익히기에 바쁘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의 기획안부터 기본적인 교정교열과 보도자료 작성까지 마치면, 그제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편집자라는 궤도에 올라서야 기획이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대개 출판 기획이라 하면, 하나의 원고를 담당하여 출간까지 책임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리고 국내 작가의 원고를 출간하는 ‘국내 기획’과 외서를 번역 출간하는 ‘외서 기획’으로 나뉜다. 국내 기획은 기존 작가냐 신규 작가냐에 따라서도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기존 작가, 즉 그 출판사와 여러 번 책을 낸 국내 작가보다는 새로 발굴한 신규 작가와 함께하면 편집자의 기획력을 더 쳐주는 곳도 많다. 여기서는 신규 작가를 통한 국내 기획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Photo by Jason Strull on Unsplash


나의 부족한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예산이든 일정이든 넉넉한 출판사의 경우 외서 기획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국내 기획은 여러 변수에 따라 외서 기획보다 편집 일정이 종종 길어진다. 일반적으로 편집자가 한 원고에 품을 들이는 시간을 2~3개월로 본다. 그보다 늘어지면 출판사 입장에서 초조할 수밖에 없다.


달리 보면, 외서는 그 책을 처음 출간한 해외 출판사에서 모든 편집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구성과 문맥 모두 매끄럽다. 즉, 편집 과정에서 큰 부담이 없다. 어차피 구성을 뒤엎을 수도 없는 데다, 굳이 뒤바꾸지 않아도 원고는 훌륭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출간된 만큼 독자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번역 원고를 꼼꼼히 살피고 국내 독자가 매력을 느낄 만한 쪽으로 기획하면 큰 문제가 없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외서 기획보다는 국내 기획을 선호한다. 외서 기획은 계약할 때부터 선인세로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번역비도 만만치 않다. 잘 팔 것 같다고 자신하더라도 독자의 선택은 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 책이 팔릴지 안 팔릴지 확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돈이 새어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국내 기획이 아무리 비용을 아낀다 하더라도, 외서와는 다른 위험이 존재한다. 나는 그중 하나를 다양성 부족이라고 본다. 투고 원고를 살피거나 브런치 등 SNS로 작가를 찾을 때면 가장 크게 와닿는 점이 분야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분야는 차치하더라도 구성이나 담론까지 유사할 때도 많다. 비슷한 건 문제가 아니지만 원고 안에서 다른 책에 견줄 만한 장점이 없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작가의 인지도에 기대더라도 특별한 점이 없다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국내 작가가 외서에서 힌트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글쓰기 실력이다. 당연히 투고 원고가 바로 책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교정교열을 염두에 두더라도 얼개가 엉성하고 문장력이 떨어져서 편집자의 눈앞이 캄캄해지는 원고가 많다. 시간이 꽤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편집자의 업무 하중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모든 작가가 그렇지 않을 것이고, 초고는 엉성해도 이후에 완벽을 기할 작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작가를 만나 한 번 고생한 이력이 있는 편집자라면 주저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편집자는 출판사에 작가를 소개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Photo by Jason Strull on Unsplash


당연히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는 국내 기획에 관해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그러나 출판사 규모를 떠나서 이러한 압박감을 많은 출판 편집자가 떠안고 있으리라고 본다. 다음에 어떤 출판사로 이직할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규모와 상관없이 국내 기획으로 실력을 탄탄하게 쌓은 편집자를 선호하는 곳도 있다. 외서 기획을 상대적으로 쉽다고 보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인데, 외서 기획도 깊이 파고들면 호락호락하지 않다.


원고를 어떻게 작성할지 작가와 협의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면 국내 기획은 당연히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선인세가 싼 외서로 라인업을 잡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획은 잘만 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국내에서 홍보하는 데도 용이하다. 책을 알리기 위해 작가가 발 벗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반응이 좋으면, 다음 책을 기획하면서 작가와 연을 이어갈 수도 있다.


시간을 아끼느냐, 돈을 아끼느냐의 갈림길에서 보통은 시간을 아끼는 쪽으로 결정되는 듯하다. 이 또한 나의 부족한 경험이지만, 출판사에서는 대개 책을 빨리 내는 걸 원하기 때문에 편집자도 외서 기획을 많이 맡는 편이다. 그 때문에 나도 그렇지만 국내 기획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편집자가 종종 있다. 국내 기획은 편집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과 같다.


종종 힘들고 지치기는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한 번 국내 기획을 마치고 나면 경험치가 제법 쌓이고 보람도 크다. 좋은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고, 앞으로 편집자로서 살아가는 데도 큰 보탬이 된다. 국내 기획에 목마른 나 같은 편집자에게 하루빨리 좋은 작가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Hannah We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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