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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ul 16. 2020

우리 집은 왜 우리 집이 됐을까?

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고향 집에는 언니 방과 내 방과 동생 방이 없다. 안방과 할머니 방과 컴퓨터 방만 있다. 안방은 보일러를 할머니 방은 군불을 땠고, 컴퓨터 방은 전기장판을 켰다. 나는 할머니와 자고 동생은 엄마 아빠와 자고 언니는 혼자 잤다.


2003년쯤 됐을까. 그 해 겨울에는 손가락이 얼얼한 걸 참아가며 컴퓨터를 했다.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세이클럽을 세 번 들락거릴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회전의자에 앉아 백번 넘게 돌다가 그가 들어왔다는 알람이 뜨면 멈췄다. 언니가 방에 들어와 전기장판을 켤 때서야 채팅은 끝났다. ‘언니 잔데. 안녕!’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시간만 주고 할머니 방으로 쫓아냈다. 할머니가 일찍 잠들면 컴컴한 방안에 초침 소리만 남았다. 머리를 감으려고 잠시 눈 감는 것도 두려웠던 어린 나는 시계의 척척 거리는 소리가 무서워서 간지럽지도 않은데 자꾸 등을 긁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까무룩 졸면서도 계속해서 내 등을 어루만졌다. 살기 위해 일한 손은 시간이 지나 손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게 됐다. 손바닥의 상처가 거칠었던 덕분에 손가락 끝을 바싹 세우지 않고 그저 문지르기만 해도 시원했다. 시원하고 따뜻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큰아빠와 친척 어른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돌로 된 마당은 사람이나 자동차가 오면 다라락 거려서 대문이나 초인종이 없는 우리 집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나는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이번에는 또 누가 불쑥 찾아온 건지 반쯤 포기하며 거실 창가로 갔다. 대게는 큰 아빠였다. 그럼 나는 잘 곳을 잃었고 오랫동안 접혀 있던 이불을 꺼내 엄마 옆에 펼쳤다. 할머니 방에는 할머니의 손님과 할머니가 뜨거운 군불 바닥에 누웠고, 컴퓨터 방에는 언니가 차가운 공기 속에 누웠고, 안방에는 동생과 아빠와 엄마와 내가 복작복작 누웠다. 나와 나의 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딱히 소중한 것도 없었다. 언젠가 큰아빠는 걸레를 놓아두는 바구니 속에서 농협 보안카드를 발견했다. 나는 중요한 것이 특별하게 없는 심드렁한 사람이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깔려 있던 이불을 걷었을 때 까맣게 그을린 방바닥을 봤다. 그 어둠은 할머니의 덩치만큼 커질 수도 있었다. 할머니가 떠난 뒤에도 할머니의 방은 나의 방이 되지 않았고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모든 사촌들은 여전히 우리 집에 모였다. 나는 똑같이 갈 곳을 잃었다. 그때서야 언니가 왜 그토록 문 닫기에 집착했는지 알았다. 언니는 물을 뜨러 가는 찰나에도 문을 꼭 닫아 그 자리를 지켰다. 언니는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무딘 사람이라서 문을 쾅쾅 닫고 다니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에게는 닫을 문조차 없어서 더 느렸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영역에는 내 생각과 달리 많은 사람이 들어왔고, 내 마음과 달리 어떤 사람은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여전히 우리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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