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 뒷문으로 나가 20분을 걸어 지하철역에 간다. 환승 없이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최적의 루트다. 산으로 비유하면 아파트는 정상에, 역은 초입에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아파트와는 다른 풍경을 봤다. 철거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있는 동네였다.
지난겨울 마산 어느 지역에 공․폐가 조사를 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아닌 집을 확인하고 빈 집 중에서도 공가인지 폐가인지 구분해 지도에 표시하는 일이었다. 공가와 폐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했다. 지금은 사람이 없지만 당장 들어와 살아도 될 정도의 상태는 공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곳은 폐가였다. 조사 구역의 길은 딱 어깨 하나 너비여서 대낮인데도 빛이 들어오지 못했다. 벽에는 야한 단어가 적혔고, 문 앞에는 ‘개조심’이나 'CCTV 있음‘이라는 푯말이 걸렸다. 지나가다 만난 할머니는 동네가 텅 비어서 그런지 도둑이 겁도 없이 TV고 뭐고 다 가져간다고 했다. 몇몇 집의 마당 개는 인기척이 들리면 곧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짖었다. 그 방범용 개 덕분에 집 가까이 가지 않고도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었다. 그건 사람이 산다는 표시였다. 24시간 내내 음침한데 해가 지면 더 무서웠으므로 새벽같이 일어나 해지기 직전까지 조사했다. 추운 새벽 5시에 양말은 두껍고 긴 걸로, 장갑은 더러워져도 되는 오래된 걸로, 목도리는 꺼끌하지 않은 것으로 골라 싸맸다. 맨 꼭대기에 살던 머리가 풍성한 아저씨는 호스로 골목길을 청소했다. “여기는 뭐 노인들이 사니까, 그분들 죽으면 끝이야. 빈 집들은 다 그래. 주인들이 죽어서 그래.”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까맣게 번져갔다. 앞집의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꽤 됐다는데 집은 아직 멀쩡해서 약간 고민하다 세모를 그렸다. 곧 폐가가 될 운명이었지만 각자의 사정은 언제나 고려 대상이 아니니까. 지도에는 동그라미와 세모와 엑스가 빽빽하게 채워졌다. 밖에서는 외면하는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었고, 놀랄 만큼 많은 집들이 버려졌다. 한 겨울인데도 온몸이 끈적했고 턱에는 여드름이 생길 것 같았다. 갈림길에 놓인 평상에 퍼질러 앉아 편의점 표 보리차를 꺼내 마셨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화면 속 활기찬 사람과 귀여운 반려견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했다.
이때의 감각을 매일 아침 느낀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와 단지 밖을 벗어난 어딘가는 나의 고향이고, 나는 돌아갈 시기가 점쳐진 사람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가파른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나눠 먹는 할머니들을 마산에서 만났고, 길바닥에 앉아서도 까르륵 거리며 잘만 노는 단출한 가족을 서울에서 봤다. 남의 삶만큼 나의 삶을 미화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다른 이가 겪었다면 싫어했을 어떤 경험은 나에게 왔지만 나는 남들보다 덜 행복하지는 않다, 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