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북소리
사물놀이패의 북소리는 처음엔 단순한 장단이었다.
장정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따라 박수를 치고,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흉내 내는 소박한 흥취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장단은 점점 더 빨라졌다. 장구는 번개처럼 내리치며 틈새를 파고들었고, 징은 무겁게 울려 퍼져 장터 바닥의 흙먼지를 흔들었다. 꽹과리는 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처럼 날카롭게 내질렀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저 구경꾼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곧 박자가 몸에 스며들자, 발끝이 절로 장단을 밟았다.
아낙네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었고, 술에 취한 장정들은 크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손바닥을 마주치며 제멋대로 북소리를 흉내 냈다.
장터 전체가 하나의 큰 악기가 된 듯했다.
북은 심장, 징은 뼈, 장구는 피, 꽹과리는 숨결.
그것들이 동시에 울려 사람들의 몸을 흔들었다.
서영은 군중 속에 섞여 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마치 그 악기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쿵, 쿵, 쿵—!”
장단은 절정에 치닫다가, 이윽고 느려졌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엔 오히려 더 큰 힘이 깃들어 있었다.
군중은 저절로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봤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때, 무대 한쪽에서 작은 불씨가 튀었다.
순식간에 횃불이 타올랐다.
사람들은 잠시 숨을 죽였다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하나의 불빛이 켜지자, 곧 이어 다른 불빛이, 또 다른 불빛이 차례차례 켜졌다.
장터는 순간 붉게 물들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것도 아닌데, 불빛은 이미 사람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땀방울마저 반짝이며 작은 별처럼 흩어졌다.
횃불은 단순히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사물놀이의 장단에 맞추어 흔들리며 춤을 추듯 출렁거렸다.
마치 불꽃이 북소리에 응답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불빛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장정들은 술기운이 확 깨버린 듯 정신을 곧추세웠다.
아낙네들의 얼굴은 불빛에 물들어 붉게 빛났고, 노인들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영은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숨을 고르려 했다.
그러나 가슴은 더 빨리 뛰었다.
“이제… 무언가 나온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확신을 느꼈다.
마침내, 북이 세 번 크게 울렸다.
“쿵! 쿵! 쿵!”
그 울림은 땅을 흔들어 군중의 발끝에서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불꽃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대를 가득 채우는 힘이 있었다.
불빛은 그의 어깨와 팔을 따라 춤추듯 흘렀다. 그러나 얼굴은 끝내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어깨를 젖히며 앞으로 나아가자,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무대 바닥을 덮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순간에 멎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동시에 숨을 삼킨 듯했다.
동명.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름.
웃다가 울게 만든 광대패의 주인.
사람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사내가, 불꽃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화려한 장식 하나 없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눈부신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장터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서영은 시선을 고정하지 못했다.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희미한 윤곽만 드러냈다.
그의 눈빛이 어딘가를 향하는 듯했으나, 그 끝이 자신일까 두려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나 귀는 여전히 무대 쪽에 쫑긋 세워져 있었다.
심장 소리가 북소리와 뒤엉켜 그녀를 흔들었다.
“저 사람이….”
짧은 속삭임이 무심코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한이는 곁에서 들었는지 작은 눈짓을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무대 위, 동명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팔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들어 장터를 가로지르는 불빛과 군중을 훑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그 눈빛과 마주쳤다고 느꼈다.
숨결 하나, 눈동자 움직임 하나까지 장터의 모두가 붙잡힌 듯 고요해졌다.
북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군중의 가슴 속에서는 북소리가 여전히 메아리쳤다.
불빛이 치솟았다. 붉은 불꽃이 아치를 그리며 하늘을 갈랐다.
사람들의 눈이 번쩍였다.
모두가 기다렸다. 그의 입술에서 첫 마디가 흘러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