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 4화

불빛 속 춤

by SeoulElectricImages

횃불이 일제히 켜졌다. 바람이 불꽃을 흔들자 장터 전체가 출렁이는 듯했다. 불빛은 저마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판자 위를 감싸 안았다. 순간 군중의 숨이 멎었다. 불빛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흰 소매, 남빛 도포, 얼굴 위를 덮은 붉은 탈. 사내였다.


사내는 말없이 서 있다가, 발끝으로 판자의 모서리를 툭— 건드렸다. 작은 소리가 번지자 장터는 더 깊은 정적에 잠겼다. 아이 하나가 킥킥 웃다 곧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때 사내가 팔을 올렸다. 소매 끝이 바람에 흩날렸다. 처음의 동작은 가볍고 느슨했다. 어깨가 한 번, 손목이 두 번. 그러나 곧 춤은 달라졌다. 손끝은 허공에 선을 그리며 별빛처럼 번져 나갔고, 소매는 불길과 섞여 파도처럼 일렁였다. 발끝이 땅을 스쳤으나 소리는 없었다. 마치 바람이 그의 발을 대신 옮겨 주는 듯했다.


군중의 눈빛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웃음이었으나 곧 숨죽임으로 바뀌었다. 아낙들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두 손을 모았고, 노인들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은 모두 그의 춤사위를 따라갔다.


서영은 온몸이 굳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춤사위는 익살도 아니고 단순한 기예도 아니었다. 그것은 신들린 듯 부드럽고, 동시에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손목의 작은 회전 하나에도 불빛이 따라 흘렀고, 발끝의 미세한 굴림에도 흙먼지가 꽃잎처럼 흩날렸다. 그의 몸은 언어보다 강렬한 시를 쓰고 있었다.


사내는 문득 몸을 멈췄다. 그리고 탈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여.”


낮은 목소리는 장터 구석까지 닿았다. 북을 치던 장정도, 술을 따르던 장사꾼도 손을 멈췄다.


“오늘은 흥이 크구려. 북은 울리고 불은 타올라, 장터가 이렇게 살아 있소.”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사내는 곧 진지한 어조로 바꿨다.


“허나 북은 집안에서도 울려야 북이지요. 불도 마음을 비추어야 꺼지지 않소. 씨앗도 그러하오. 돌 위에 떨어지면 말라죽지만, 기름진 흙에 뿌려지면 싹이 트고, 나무가 되어 그늘을 드리우지 않소.”


그는 무릎을 굽혀 손을 땅에 대었다. 불빛이 그의 얼굴 반을 물들이며 진지하게 빛났다.


“사람 마음도 그러하오. 닫히면 돌밭, 나누면 기름진 밭이지.”


군중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노파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장정 하나는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웅얼거렸다.


사내는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와 노파의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노파가 놀라 손사래를 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듭니다. 내일은 다른 이가 들 것이지요. 그것이 인심이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과 감탄이 섞였다. 그러나 곧 다시 고요가 흘렀다. 이제는 누구도 쉽게 떠들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의 탈을 벗었다. 끈이 풀리며 붉은 탈이 내려오자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젊으나 노련한 눈빛, 고요하면서도 깊은 얼굴.


그는 곧바로 군중 속 누군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곳은 서영이었다. 아무도 몰랐으나,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정확히 그녀를 찾아냈다.


서영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눈이 마주쳤다. 불빛 속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오직 그와 자신만이 남은 듯했다.


숨이 가빠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이 떨렸다. 발이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미소 지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웃음.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서영의 마음은 무너졌다.


서영은 결국 몸을 돌렸다. 치맛자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군중 사이를 헤쳤다.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이 곧 하늘이오.”


그 울림이 등 뒤를 따라왔다. 서영은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은 깊이 스며들었다.


골목 어귀에 다다라 숨을 몰아쉬었으나, 불빛은 꺼지지 않았고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새벽녘 -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