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년 B.C. 이드라섬, 포로스섬, 에기나섬 -
에어콘 바람이 차가웠다. 그 와중에 버너 위에 해물탕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 숟가락을 떠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와 위를 지나갔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거의 얼음에 가까운 소주를 한잔 들이 켰다. 타고 들어가는 식도를 느꼈다. 공기는 시원하나 나는 더위를 느끼고 있었다. 머리에서 땀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배 위에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아테네 그리스였다. 아침 8시반에 아테네 근교 항구 Trokadero를 출발하는 크루즈(Athens one Day Cruise)를 타고 섬 3개를 돌고 있었다. 이 더위는 그리스 에게해 배 위에서 7월초에 느끼는 오후 3시의 절정의 더위였다. 시에스타가 끝나자 현실로 돌아왔다.
아침 8시반에 아테네 항구에서 배를 타고 우선 3시간을 가야 한다고 했을 때는 한 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스에서 또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섬 네개(로더스, 그레테, 산토리니, 미코노스)를 이미 돌아 본 후였기 때문이다.
우선 오늘은 첫 번째 섬이 이드라 섬이었다. 11시반이 되자 한 작은 섬에 도착했다. 오렌지색 지붕에 하얀색으로 색칠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도시계획으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베어 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우선 하선하여 주변을 구경했다.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으나 눈으로만 볼 뿐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좌측으로 돌다보니 동상이 높이 세워진 포대 같은 곳이 있었다. 바다와 함께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대포가 있는 것으로 봐서 여기서 적들과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저 동상은 이 마을 지킨 장군이었을 것이다.
현지인을 찾아 저 대포가 무엇에 쓰였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짧은 영어로 19세기 125척의 선박과 1만여명의 선원들이 살았다고 했다. 그리스 독립 전쟁 당시에는 150척의 배와 수송으로 오스만 제국에 타격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저 동상은 이곳 이드라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지킨 이순신장군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때 당시 오스만 배들을 격추시키는 장면을 떠올렸다.
맥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매점에서 미소스(Mythos) 맥주를 두캔 사서 그늘에 앉아 한 없이 바다를 바라 보았다. 담배에 아직 너그러운 이곳 그리스에서 그늘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잔과 담배 한 모금은 피로를 씻어주는 탄산수와도 같다.
다시 배를 탔다. 이번에는 포로스(Poros) 섬으로 갔다. 이드라 섬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오렌지색 지붕이며, 기념품가게며, 테라스가 있는 음식점이며...그래서 이 섬에서는 30분 밖에 시간을 안 줬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곧바로 배에 다시 탔다. 서로 별 차이 없는 섬들을 돈다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인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천에 168개의 섬이 있다고는 하나, 그중 유인도는 약 20개 정도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10도10색이라 하여 10개 주요 섬을 선정했다. 각각의 섬의 특색(스토리)을 찾아 내는 것이 주요 사항이다. 각각 특색이 없는 그저그런 섬 10개를 한꺼번에 돌아본다고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에기나(Aigina)섬에 내렸다. 시에스타에서 깨어난 오후 3시였다. 후끈후끈한 열기가 잠에서 깨웠다. 꿈에서는 속이 풀리는 얼큰 시원한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퍼먹고 있었다. 찌개가 뜨거워서 내가 더운 줄 알았더니 이 배위의 오후 3시가 더웠던 것이다. 4시 정도가 되어서 우리는 섬에 내렸다. 다른 관광객들은 아페아 신전을 보기위해 버스를 타고 갔다. 아페아(Aphaia) 신전은 기원전 500년경부터 480년경에 세워진 도리스 양식의 신전이라고 한다. 아폴론 신전 유적 또한 북쪽 콜로니 언덕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도 고대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고 하니 무슨 섬마다 이렇게 유적지가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섬의 현지 문화를 느끼고 싶었다. 이 섬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섬을 천천히 돌아봤다. 해변가에 있는 과일노점에서 체리를 샀다. 비닐봉지 안에 체리를 넣고 물을 넣어 씻어서 주었다. 2유로에 한 봉지를 주었다. 체리를 먹으며 해변을 돌아 수산시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 갔다. 몇몇 상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생선가격을 흥정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골목 안쪽에는 몇몇 노점들이 있었다. 우리로 말하면 시장 안쪽에 있는 순대국밥 집 같은 개념이었다. 밖에 테이블들이 즐비하여 우리는 손님이 없는 한곳에 앉았다. 옆을 보니 홍합조림, 조개찜, 오징어 튀김 등등 우리와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로컬푸드였다. 이곳 현지인들이 먹는 그런 음식 말이다. 우리는 홍합요리를 시켰다. 그러자 씨름선수 같이 생긴 주인아저씨가 홍합에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넣어 끓인 게 있다고 했다. 우린 그것과 함께 미소스맥주를 달라고 했다. 6시 배에 타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하자 금방 나온다고 했다.
우선 커다란 빵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지나 작은 그릇에 홍합토마토 소스 조림이 나왔다. 이름을 물어보니 ‘이우베치’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이우베치라고 외치며 맥주를 들이켰다. 얼음잔에 주어서 그런지 맥주가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이우베치를 한입 먹었다. 약간 우조(그리스 술)향이 나왔다. 나는 이것을 분지 또는 산초향이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은 이 향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게 먹다보니 옆 뒤에 있는 안경 낀 할아버지가 신기했나 보다. 어디 아시아인 2명이 와서 그곳 시장에서 현지인이나 먹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Where are you from? China?"
"No, we are from Korea."
맨날 하는 통상적이 대화다. 중국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다 보니, 미코노스에 음식점들은 우리에게 ‘니하오’라며 인사를 했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중국관광객들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How is the food?" 한 할아버지가 우조를 한 모금 마시고 물어봤다.
“It's great. I really like it. I wish it had more soup in it." 우리는 국물이 고팠다.
“What are you drinking?" 오히려 우리가 먼저 물어봤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우조!“라고 답했다. 내가 카잔차키스 닮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놀란 듯이 카잔차키스가 여기 이 자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다고 했다. 우리는 놀라며 농담 말라고 했다. 그리고 시장골목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다시 할아버지 쪽을 돌아보니 그는 불투명한 우윳빛으로 변한 우조잔만 남긴 체 사라지고 없었다. 배 시간이 다 되어 급하게 음식값을 지불하고 큰 거리로 나오니 그 골목 안내판에 ‘카잔차키스 거리’라고 쓰여 있었다.
6시에 다시 배를 탔다. 우리는 다시 아테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