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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M씨 Sep 27. 2015

평범한 직장인 M씨의 그리스섬 탈출기-1

- 1500년 B.C. 크레타섬 -   

 

  우리는 몇일 전에 크레타(Crete)섬에 있었다.  크레타 섬에서 생각 나는 건 카잔차키스 묘지와 박물관에 간 것이었다.  설마 이곳이 이 유명한 사람의 묘지일까?  20세기 2대 문호라는 사람이었다.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 벽에는 낙서가 많이 되어 있었다.  그 흔한 안내판도 없었다.  묘지에 가니 더 놀라운 것은 사각형 모양의 돌무덤에 나무로 된 십자가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돌무덤에는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는 유명한 문구가 친필로 쓰여 있었다.  주변 나무나 잔디는 정리되는 않은 듯 무성하게 나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최후의 유혹’으로는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도 이렇게 아무도 관리 안하는 듯 그냥 도심에 버려진 듯 하다.  어찌 보면 그의 좌우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고, 인생을 그대로 살다 간 모습이다.  씁쓸하기 짝이 없다.  오늘은 라키 한잔 해야 겠다.

  참고로 우조(Ouzo)는 소주와 같은 그리스 전통 술이고, 독특한 강한 향취가 나며 40도 이상 되는 쎈 술이다.  그와 달리 라키(Raki)는 강한 향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약간 투명한 데킬라 맛이 난다.  흔히들 우조보다 좀 더 강한 술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호텔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길을 나섰다.  우선은 가장 유명한 베니젤로 광장으로 갔다.  많은 현지인들이 카페에서 음식을 먹으며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광장으로 가니 꽃을 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꽃을 절대 받지 말라고 동행자가 말해 주었다.  받으면 무조건 돈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8월25일거리로 향했다.  1898년 발생한 순교자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거리라고 한다.  은행들 같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금융 중심지인가 보다.  여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자리 잡고 터키 케밥과 유사한 기로스를 먹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카잔차키스 묘지에서부터 라키가 고팠다.  빨리 자리를 잡고 한잔 하고 싶었으나 26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카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몇 명은 호텔로 돌아가고, 몇 명만 남아 있었다.  나와 동료 K군은 우선 주변 공원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러자 옆 의자에 앉아 있던 허름한 차림의 그리스인이 다가왔다.  손으로 담배 잡는 모습을 했다.  그제서야 이분이 노숙인라는걸 깨달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한국담배 1미리짜리를 주었다.  “This is Korean tabacco."라고 하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는 말없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쿨한 아저씨다.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키와 미소스를 시켰다.  미소스를 한 모금 마셨다.  이 한잔을 위해 오늘도 살았다.  그 만큼 맛있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라키를 한잔했다.  주인아저씨가 놀란 듯이 쳐다봤다.  여기는 원샷 안하나?  생각했다.  다시 라키를 달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지러 갔다.  기다리는 동안 앞에 있는 성당을 봤다.  혹시 저 성당도 유래가 있나 궁금해 하며 가이드북을 찾아봤다.  AD961년에 세워졌단다.  크레타에서 가장 큰 교회란다.  성 티투스의 두개골이 안치되어 있단다.  성 티투스은 사도바울을 제자란다.  그런 교회 앞에서 술을 먹고 있어도 되나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 안내판으로 향했다.  안내판을 보니 성 티투스 교회(Church of Saint Titus)라고 쓰여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주문한 라키를 두모금에 마시고 다시 한잔을 더 시켰다.  그랬더니 주인아저씨가 놀란 듯이 “No more Raki.”란다.  Y 교수님에게 물어보니 남쪽에서는 의외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북쪽은 무조건 원 샷 이란다.  나중에 가이드북을 찾아 보니 라키나 우조나 아주 조금씩 마시는 식전 주란다.  그걸 원샷하고 있었으니 놀랄 만도 하다.  그것도 사도바울을 제자 성 티투스의 두개골이 있는 교회 앞에서 말이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크노소스 궁전 유적을 답사했다.  이후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들렀다.  점심으로 양고기를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양고기 중 가장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러나 다른 일행들은 배가 부르거나 냄새가 안 맞거나 해서 나에게 양보를 해 주었다.  접시위에 수북이 쌓인 것을 보니 이게 양고기인지 인천 신포동에 있는 감자탕 고기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쨌거나 풍성한 식사를 한 후, 말리아 궁전과 이라클리온 박물관을 들러 봤다.

  1900년대 초반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이 미로 같은 크노소스 궁전과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미노스왕의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다.  미노스 왕이 누구더냐.  제우스와 유로파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궁전을 만들기를 원했다.  천재 건축가인 다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미로로 된 궁전을 구축하지만 미노스왕은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 둘을 가둔다.  그러나 가둘 계획을 미리 안 다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양초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 오른다.  젊은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지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저버리고 태양을 향해 높게 날아 오르다가 에게 해에 떨어져 죽는다.  

  여기서 발굴된 ‘황소를 뛰어넘는 사람’(Bull Leaping) 프레스코화, 뱀의 여신(The Snake Goddesses), 황금 조각상, 미노스의 반지(The Ring of Minos) 등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파이스토스 판은 아직 해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파이스토스 판은 크노소스 궁전의 미로를 나갈 수 있는 지도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하늘을 나는 양초를 만드는 방법이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을 부를 수 있는 비밀주문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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