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day Jan 20. 2018

크루즈 승무원 노트 #3

미스코리안, 혼자 한국인으로 일한다는 것

Hello Ms.Korean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포트에서 보이던 아파트 한 채만 한 크루즈 선을 보았을 때의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꿈꾸고 상상하던 선사위에 내가 있다니!
 
      첫 승선을 하고 HR 오피스까지 가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크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눈에 받았었다. 신기하면서도 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Hello"를 외쳐주던 크루들. 그렇게 나는 65개국 크루 1000여 명이 넘는 작은 마을과 같은 크루즈 선사의 가족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뚫고 HR 오피스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아시안이 적은 이곳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것. 동남아시아가 주 국적을 이루는 크루즈 선사에서 나는 그들과 다르게 조금은 더 하얀 피부, 조금은 더 큰 키, 다른 얼굴형, 그리고 흑발의 생머리가 새로웠던 모양이다.
 
     크루즈에서 함께 먹고 자는 크루들과 함께 한다는 건, 하나의 작은 마을을 이룬 것과 같다. 그만큼 소문도 무성하고 루머도 무성한 곳이 크루즈라 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것은 이들에게 이슈였는지 많은 이들이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Hello Ms.Korean?'


2016.03.24 첫 출근




혼자 한국인으로 일한다는 것


      외국에 있는 한국인은 한국의 외교관이라고 한다.  특히 혼자 한국인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대표로 이곳에 와있는 느낌과 같았다. 내 행동과 말투 하나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단 생각에 더 조심스러운 점도 있다. 웃기게도 외국에선 누구보다 진정한 애국자가 된다.
     대한민국, 이젠 당당하게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고 다양한 방면에서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나라. 그런 우리나라가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다. 동아시안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묻는 건 "Chinese?", "Japanese?"  그리고 "Where are you from?". 오마이 갓, 어찌 동아시아 중 가장 세련되고 이쁜 한국인의 언급이 없단 말인가. 처음엔 저 사람들이 무식하다 생각했지만 나중엔 우리나라가 아직도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동료들과 게스트들이 나에게 한국에 대해 물을 때(특히 북한에 대해), 혹은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나에게 사실을 물을 때 참 당황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고.

    혼자 한국인으로 지내는 것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동지애에 똘똘 뭉칠 수 있는 한국의 정이 어찌나 그립던지. 개인주의에 가까운 서양인들에게 느낄 수 없는 그런 한국의 정이 그리웠다. 같은 국적의 친구들끼리 모여 매 식사 시끌벅쩍한 동남아인들을 보며 한국의 정이 그리웠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 쓰는 날들이 많아졌다, 배위에서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쓸 수 있는건 다이어리밖에 없었다. 특히 영어 못하는 나에겐 더욱 더 한국인이 그리울 수 밖에...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크루즈 선사 위에선 말조심은 필수 필수! 아무리 친한 내 친구라 한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잘못 말했다간 내 의도와 다르게 말이 잘못 전달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을 많이 아꼈다.

    반면에 혼자 한국인으로 좋았던 일은 영어가 다른 환경에서보다 빨리 늘었다는거다. 나에게 영어는 선택권이 아니었기에 서바이벌을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배위에서 100% 영어를 사용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한들통역관도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환경에서보다 조금 더 빨리 영어를 배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약속 세 가지

   첫 승선을 앞두고 두려움 마음이 가득했었다. 7개월치 짐을 싸며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다, 가족 떠나 친구 떠나 나 홀로 낯선 그곳에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무서움에, 간절했던 꿈을 이뤘음에도 나는 울었다. 당시에 다이어이에 혼자만의 약속을 적었다.
    첫째,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둘째, 항상 웃으면서 먼저 인사하기.
    셋째, 이름 부르기.
 
    선상에서 다른 일은 몰라도 웃으며 인사는 참 잘하고 다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암말 말귀를 못 알아듣고 일 배우는 속도가 더딘다 한들 미움받지는 않았다.
   하루는 스스로의 업무 능력에 대해 실망하고 우울하게 방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IT 부서의 친구를 반대편 계단에서 마주쳐서 큰 소리로 외쳤다. "Good morning, Ploffy!" 내 인사를 듣고 곧장 나에게 달려온 플로피가 말했다. "May, how come you are always happy and smiling?" 아닌데, 사실은 행복하지도 않고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날이었는데 남들에게 나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나 보다.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구나.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며.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넘겼다.  그렇게 나는 또 한번 단단해졌다.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날이 모여 지금의 성장한 내가, 그리고 꿈 많은 내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크루즈 승무원 노트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