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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day Sep 28. 2018

크루즈 승무원 노트 #5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순리 : 죽음(Death)

세상의 순리 


이번엔 조금 무거운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서 한 번뿐인 삶을 살다 떠난다. 즉 모든 생명체에게 죽음이 존재하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다. 
   호화롭고 럭셔리한 크루즈는 어느 누구에게나 한 번쯤 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싶다. 크루즈 여행을 앞둔 승객들은 승선하기 전부터 들떠있는 흥분을 감출 수 없어 보였고, 그 열기는 데스크에서 근무하던 나에게 매번 전해져왔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노부부 승객, 커플들 그리고 먼 곳에서 온 외국인 승객들까지! 각자 다른 크루즈 여행의 이유가 있겠지만 다들 이곳에서 행복한 휴가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를 기대하며 왔다는 것만큼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크루들이 승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순리가 있는데 그것은 '죽음(Death)'이다. 행복해야만 할 이곳에서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이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이다.











가족과의 마지막 여행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대가족이 크루즈 여행을 왔다. 승선 첫날, 가족 단체 티를 입고 다 함께 데스크에 들려 인사를 했던 친절하고 유쾌한 모습에 기억에 남았다. 
   여행 3일째가 되던 날, 게스트 서비스팀 모두 갑자기 잡힌 미팅에 소집되었다. 승객 한 분이 주무시던 중 캐빈 안에서 갑자기 심정지로 돌아가셨다고 매니저가 전했다. 캐빈 번호(Room number)와 승객 이름을 듣자마자 대가족의 할아버지인 것을 알았다. 워낙 나이가 있으셨고 산소호흡기를 갖고 여행을 하셨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 많은 가족들은 어떨지 감히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다.

   우리 부서는 이 가족들이 하선할 때까지 케어해주어야만 한다. 소식이 있던 시각, 크루즈가 바다 한가운데 떠있기에 다음 포트에 정박하는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동안 우리가 유가족들을 위로해 줄 수 없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야 할 모든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 예를 들어 내륙으로 전화 통화, 인터넷 제공, 캐빈 체인지, 음식 배달, 메디컬 센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더욱 길게 느껴질 24시간을 최대한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려고 애썼다. 
   데스크에 찾아온 할아버지의 따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 승선으로부터 3일간 할아버지와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들을 전부 무료로 선물하는 게 어떨까?(선사 내에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어준 사진들은 장당 20달러 정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곧장 매니저에게 연락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매니저는 좋은 생각이라며 컨펌을 해줬다. 나는 바로 포토 매니저에게 연락해 사진을 받아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들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가족들은 감사하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포트에 도착한 아침 일찍, 가족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하선했다. 미리 연락해둔 포트 에이전시가 미리 차를 준비해두어서 가족들은 빨리 떠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떠나고 두 달 정도 지나 잊어갈 즘 가족으로부터 감사 편지가 왔다. 'Thank you so much' 







WISH CHILD


   WISH CHILD란 죽음을 앞둔 어린아이들을 말한다. 공식적인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곳에선 WISH CHILD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여행을 오기 전부터 우리는 미리 정보를 받아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준비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모든 부서와의 정보 공유는 필수이다.  
   
   매니저에게 들은 WISH CHILD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아이는 동생과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크루즈 여행을 왔다.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이 어린아이는 방 안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 할머니와 할아버지, 동생은 포트 밖으로 놀러 나갔던 상황이었고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 아이는 엄마는 함께 배에 남아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죽음 소식을 곧장 다른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고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할머니가 포트로 돌아와 크루즈로 재 승선을 하면서 발코니 캐빈이었던 아이의 방을 쳐다봤는데 아이가 발코니에 나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없었고 뒤늦게 아이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어쩌면 소름 돋고 무서운 이야기일 수 있으나, 가족들은 아이가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향해 한 인사라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남은 가족들은 몇 해마다 아이와 마지막을 함께 했던 크루즈 선으로 여행을 온다. 그날 아이가 묵었던 같은 방을 쓰기 원해 우리 회사는 항상 같은 방을 제공한다고 한다. 



    









반갑지 않은 연락


  크루즈가 출항하고 포트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어딘지 모를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즈음 휴대전화의 시그널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즉, 전화나 메시지, 인터넷까지 차단되기 때문에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선 선내에 있는 전화기를 통해 유료로 전화를 쓰거나 선내에서 판매하는 와이파이를 사서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크루즈에서 집중하는 완전한 휴가를 즐기고 싶다면 이마저도 구매하지 않고 내륙에 있는 가족과 며칠간 연락을 하지 않는 게스트도 분명 있다. 죽음은 크루즈 내에서뿐만 아니라 내륙에 있는 가족들도 당연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바다 한복판에 있는 게스트에서 연락을 할 수 있을까?
   내륙에 있는 가족들이 크루즈 메인 오피스에 연락을 하면 그들의 메시지를 크루즈로 전달해줄 수 있다. 시답지 않은 메시지는 당연히 받아주지 않고 중요한 사항들은 크루즈 선의 게스트 서비스 부서로 전달되는데 우리는 그걸 'EMERGENCY CALL FORM'이라 부른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내용으로, 연락을 받아야 할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다.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가 났을 때 상황들이 대부분인데 그중에 가장 어려운 상황이 가족 누군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을 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게스트가 내륙에 있는 가족과 전화통화를 연결해 주는 일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지만 직접 전달하지는 않고 가족들이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해봐라 하고 무료 전화를 제공한다. 그리고 게스트들은 전화 너머로 소식을 듣는다. 누군가는 너무 놀라 사실임을 재차 확인했고, 또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근무하는 마지막까지도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슬픔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휴지를 건네는 일, 언제든지 가족과 연락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집에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를 알아봐 주는 일 뿐. 





마약 같은 크루즈


   행복해야만 할 크루즈에서는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안전사고, 성추행, 싸움, (잠시) 실종, 그리고 죽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즈는 마약과도 같은 곳이다. 이러한 모든 사건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또 다른 하루를 게스트와 보낸다. 고요한 맑은 바다를 보다가 거칠고 어두운 바다를 보는가 하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다가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뽑힐 듯이 날리기도 한다. 마치 하루는 너무 바빠 정신없이 뛰쳐 다니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바쁜 하루는 보내고  다음 날이면 오케스트라의 잔잔 한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게스트들을 보며 전 날은 금세 잊고 잠잠한 또 다른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래서 크루즈는 마약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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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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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ising Day, Cruising May'  어제는 미국 오늘은 바하마 그리고 내일은 멕시코,  이리 번쩍 저리 번쩍 항공승무원과는 다른 크루즈 승무원.  카니발 크루즈 라인의 최초의  게스트 서비스 한국인 크루즈 승무원 한미선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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