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etarian

외국인 북클럽 친구들과 채식주의자 읽기

by 메이


작년 여름부터 동네 커뮤니티센터의 북클럽에 가입해 북클럽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이번(2024년 2월) 책은 한국책, 채식주의자이다!


외국인 친구들과 한국작가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 이 책을 잘 읽고 잘 이해해서 잘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중국 문화 대혁명 시기의 책인 'A Single Tear'을 읽고 참석했던 작년 11월의 북클럽, 자리에 참석한 중국에서 온 친구가 자신이 알고 있고 경험한 것들을 들려주어 내가 책을 읽고 이해한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섬세하게 그 책과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책을 읽는 만큼, 나도 북클럽 친구들에게 그런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 나는 한국어책과 영어로 번역된 책 둘 다 읽은 후 북클럽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 한국어판은 읽고, 다음으로 영어판을 읽으며 다시 한국어판을 꺼내 비교해 가며 평소에 내가 읽는 것보다 더 촘촘하고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사실 번역서는 그 자체의 작품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내가 발견한 차이점 중 하나는, 영문판에서는 영혜의 남동생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어판에서는 영혜의 남동생, 처남으로 지칭되지만 영문판에서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 '영호'로 제시된다, 중심인물도 아닌 남동생이 이름을 받아 나오는 건 우리나라와 외국의 호칭문화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닐까. 영혜의 남편이 영혜의 남동생(처남)과 영혜의 형부(형님)를 부를 때, 영어로 번역하면 모두 'brother-in-law'가 된다. 영어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보다는 '처남' '형님'등 가족 호칭을 부르게 되니, 번역서에서는 형님은 'brother in law'를 두되 손아랫사람인 처남은 '영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설정을 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름 대신 이모,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등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나 선생님, 과장님, 사장님 등 직위나 직업을 설명하는 용어를 쓰는 일이 더 일반적이라고 설명하니 북클럽 친구들이 모두 흥미로워했다. 덧붙여, 한국은 가족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매우 자세히, 복잡하게 있는데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aunt'로 지칭하되는 개념이 한국에서는 'aunt'가 아빠 쪽인지, 엄마 쪽인지,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 지,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 지, 그 aunt가 'in-law' 관계인지에 따라 각각 지칭하는 용어가 다 다르다는 것을 말하자 다들 놀라 점점 눈이 커졌다!(4촌 관계 6촌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도 다른 것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가족을 설명하는 용어의 복잡성은 한국 문화에서의 가족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주고, 결국 '이름'으로 대변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특성보다는 그 사람이 하는 '역할'이 더 강조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채식주의자에서 보이는 부모-자녀, 부부, 형부-처제의 가족관계도, 문장으로 해석되는 것 이상의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이어 북클럽에서 채식주의자의 중요한 장면인 인혜 집들이에서 영혜 아버지가 영혜의 뺨을 때리고 두 팔을 잡고 음식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영혜는 자신이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이유를 가족들에게 설득할 수 없었을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폭력적인 남성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억측일 수 있지만 영혜와 마찬가지로 딸 둘, 아들 하나의 둘째 딸로 태어나 자란) 나는 출생순서 상 영혜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을 거라고' 화제를 던졌다. 예전에 대부분의 딸 둘 아들 하나의 집에서 막내아들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집안의 기대와 압력에 의해 강요된 임신과 출산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성비가 말해주듯, 뱃속의 아이가 여자아이일 경우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았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로부터 다른 역할, 다른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다. 남자아이가 더 선호되는 사회에서,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의 부모'가 '여자의 부모'보다 더 우위에 서고, 여자의 부모는 사위를 어려워하고 귀한 대접을 하는 반면 며느리로서의 여자는 같은 대접을 받는 일이 드물다. (바뀌어야 하고, 바뀌어가고 있지만요..)




그래서 '영혜의 문제-고기를 안 먹는다'가 있을 경우 남편은 그런 문제를 부부 관계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혜의 어머니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고발하고, 권위적인 영혜의 아버지는 영혜의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상황이 묘사되는 것이다. 또한 가족식사 자리에서 영혜의 남동생이 나이 많은 누나에게 훈수를 두고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자 깜짝 놀란 남동생의 처가 말리라고 하자 가만히 있으라며 아버지의 폭력을 묵인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어느 사회에서나 있어왔기에 '한국 가족'의 이야기인 채식주의자 속 가족 이야기에 북클럽에 참석한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멤버들도 공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위주의 가족문화를 가지는 것은 '특수한' 문화로 바뀌어야 할 부분은 바뀌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모아졌다.




마지막으로, 자매, 인혜와 영혜의 이야기.

1부인 채식주의자와 2부인 몽고반점에서 인혜와 영혜는 다른 점이 많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대응하는 방법이 달랐고(인혜는 아버지 해장국을 끓여드리고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에서 살아남았고, 영혜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혜는 오랫동안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혜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옷을 입지 않는 등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인혜의 남편에게도 인혜는 생활력이 강한, 자신을 보조해 주는, 고마운 아내의 역할이지만 영혜는, 성인인 영혜의 몸에 여전히 '몽고반점'이 있다는 듣고 예술혼+성적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인 것이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게 3부의 '나무불꽃'이었다.



영혜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마음이 좋지 않은 인혜, 애써 기분 좋은 척, 네 병실에서는 나무가 잘 보인다고 하니. 영혜가 하는 말.



sister... all the trees of the worlds are like brothers and sisters...



병원에서 실종된 영혜를 숲에서 발견한 비 오는 날은

인혜가 산을 떠돌던 어느 새벽을 떠올리게 하고


영혜가 자신의 젖가슴은 누구도 해하지 않는다며

가슴을 내어놓고 햇볕을 쬐던 낮은

인혜가 지우를 모유수유할 때 입던 옷을 꺼내어 옷에 밴 젖냄새를 맡으며 위안을 삼던 새벽을 떠올리게 했다.



평행선을 걷던 다른 두 자매의

연결성을 발견한 지점이었다




아버지에 의해 상징되는 직접적인 언어, 신체적 폭력,

남편에 의해 상징되는 무관심, 이해하지 않음, 이해하지 못함에 대한 폭력,

그리고 영혜를 '채식주의자'라 네이밍 하고(책에서 단 한 번도 영혜는 자신을 채식주의자라 칭한 적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영혜가 선택한 것을 존중하지 않고 대신 특정 방식을 강요하는 문화적인 폭력



이 모든 폭력적인 세계에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은 영혜와 인혜의 행동처럼 다르더라도

그것은 결국, '하나의 나무'에서 나온, 타인이 내가 될 수 있고 내가 타인일 수 있다는 그런 연결성. 을 3부 나무불꽃에서 느꼈다.



지금까지 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그 어떤 책 보다

보편적인 주제(=가족)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좋은 책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작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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