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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04. 2021

육아휴직한아빠는 낮에 뭐 할까?

아빠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고등학교 시절, 간절하게 기다리던 첫 여름 방학을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방학기간 자율학습 신청서> 라는  내라고 했다. 그 시절 고등학생들은 진짜 방학이 없었다.


방학에도 매일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작성을 하고 있는데.. 왜?!

분명히 "자율"학습이고, "신청"하는 건데? 왜 방학에 학교에 오라고 하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나는

신청서를 들고 집에 와서 부모님께 내밀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부모님은 평범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왜 하기 싫은지를 차분히 물어보신 다음,

방학 동안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지 계획을 써오라고 하셨다.

내 계획서를 검토한 부모님은 담임 선생님께 우리 아들만 유난을 떨어서 죄송하다는 손편지를 쓰셨고,


나는 우리 학교에서 그 해 여름방학에 학교에 오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육아휴직을 한 나의 팔자는 이때부터 싹수가 보였던 것이었구나. 이제야 새삼 깨닫는다.


당연하지만, 시간을 잘 보내려면 계획이 꼭 필요하다.

남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1년은 절대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계획을 세우려면 내가 왜 육아휴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첫째, 아이들에게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났으며, 우리는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

양가 모두 지방에 계시기도 하고, 부모님도 당신의 삶이 있으시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돌봄의 손길이 필요했다.

유일한 방법인 '등하원 도우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이렇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한 어느 봄날 오후, 날씨가 너무 좋다.

아이들이 갑자기 한강 공원을 가고 싶어 한다.

휴직 중이라면, 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다!

친구들과 놀이터도, 마트도, 키즈카페도, 갑자기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다. 언제든.



둘째, 직장생활을 잠시 쉬며, 내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스물일곱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12년을 달려왔다.

첫 아이가 태어난 서른셋부터는 회사와 집안일, 육아만 오가며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회사든 집이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이 넘쳐났다.

아이들은 너무 예쁘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해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멘탈 관리도 되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 회사 생활을, 한 발 떨어져서 넓은 시선으로 봤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선택하는 대로 시간을 써보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두 가지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합치면 계획이 나올 것이다.

육아휴직 한 달 전, 실제로 썼던 계획에는 이런 내용들이 쓰여있다.



[육아휴직 동안 할 일]

육아
1 아이들과 매일 1시간 몸으로 놀아주기
2 매일 1권 이상씩 책 읽어주기
3 체험활동 등 계절별, 월별로 다양한 추억 만들어주기

집안일
1 청소 : 거실, 방, 화장실, 베란다, 창문, 신발장, 집안의 모든 곳을 요일별로 쓸고 닦기
2 빨래 : 기본적으로 매일, 빨래돌리기 + 이불, 운동화
3 정리 : 매일 깨끗한 상태 유지, 오래된 짐 줄이기, 사용하지 않는 물건 줄이기(그릇, 책, 장난감, 옷 등등)
4 요리 : 아이들 아침/간식/저녁, 밑반찬, 일주일 식단 짜기
+ 가끔 아이들을 요리에 참여시키기 : 쌀 씻기, 수제비 등등
5 운동 : 주 3회 이상, 배드민턴 제대로 배워보기, 수영
6 독서 : 좋아하는 책 읽기, 취미 찾기
+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
+ 일주일에 한 번은 밖에서 점심 사 먹기



나는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을까?

다른 글에서 따로 이야기해볼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육아휴직에 있어서 우려되는 일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회사에서의 입지였다. 승진 시기이기도 했다.


일단 소득은 아내가 복직을 할 테니 역할이 바뀌는 것일 뿐 금액 차이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작지만 육아휴직 급여가 나올 것이기에 어느 정도 보전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크게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휴직이 고용을 위협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고용 자체가 문제없다면, 평판인데

어차피 살다 보면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남의 시선보다 내 인생이 중요하다.


승진은 1년 늦게 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복직해서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만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앞에서 안 보이는 사람은 잊기 마련이다.


우리 부부는 가정이 있어야 회사가 있다는 가치관이 다행히도 일치하고 있다.

직장에서 남들보다 연봉 덜 받고, 승진 늦어도 괜찮다.

육아휴직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을 수 있다면 감내할만한 대가 아니겠는가?


자 이제 ①휴직 원인/목적 분석, ②휴직 계획, ③휴직에 따른 위험 관리까지,

준비는 끝났다. 이 정도면 육아휴직 준비는 다 된 거 아닌가.


아빠는 바쁜 낮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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