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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11. 2023

씻겨진 그릇



설거지를 좋아한다. 담았던 음식 상관없이 물과 거품으로 닦여지는 과정은 마음을 개운하게 한다. 언젠가 시급 500원이 더 많다는 이유로 레스토랑 주방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손이 빠르고 꼼꼼하다는 이유에서 내 업무는 10할에 8할이 설거지였다. 그들이 한쪽에서 요리를 배울 때 나는 그릇을 닦았다. 그러나 그것이 썩 싫지 않았던 것은 종일 손님들이 남긴 음식물을 치우고 갖가지 종류의 그릇을 닦고 나면, 나의 어딘가도 깨끗해진 기분 때문이었다.






정성스러운 손길에서 만들어진 요리가,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우고 그 의미를 다 한 후 없어지면, 남은 흔적을 담고 있는 것은 접시다. 그렇게 접시는 뭔가의 목적을 조용히 담아내고 기쁨이 되었다가 지저분한 ‘치울 것’ 이 된다. 하지만 씻어내면 그만. 금방 반짝이는 원래의 그로 돌아온다.

사람은, 인생은 이럴 수 없기에. 어떤 흔적도 흔적이 되고, 치울 것 닦을 것도 그 자체로 남는 일이 많기에.

어쩌면 나는 씻겨진 그릇을 보면서 나의 어딘가를 자꾸만 씻어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적에 흔적이 묻은 것들과 실수로 잘못 담아낸 것들, 이제는 그만 닦아도 될 이야기들을 자꾸 씻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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