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팔이 부러졌다.

by 김나나

남편 팔이 부러졌다.

주취 중 빙판길에서 넘어진거 같은데, 어떻게 넘어졌는지 남편은 도무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집 앞에서 넘어졌음에도, 넘어져서 1시간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했음에도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119에 전화해서 응급실에 실려갔고, 응급실에서 내게 새벽 5시에 전화가 왔다.

진짜 미련하다. 아내에게 혼나는게 자신의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싫었나보다.

응급구조대가 와서 보호자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도 안 알려주고 싶다고 실갱이를 했단다.

자존심인지 뭔지, 참.. 미련한 사람이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이 혹여나 깨서 엄마를 찾을까봐 짧게 편지를 써놓고 응급실로 향했다.

놀라긴 했으나, 심하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횟수가 잦지는 않아도, 한번 마시면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는 남편이 늘 못마땅했기에 어쩌면 이런 사고가 난게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이 다쳤다는 것보다는 이런 일을 계기로 술과 작별을 고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미 사건이 지나가고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때의 생각인인것 같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팔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다리였다면, 내가 어떻게 움직여주지 못했을 것이고, 머리였다면 정말 큰일이 일어났을텐데, 팔 그것도 왼팔이라 천만다행이었다.


응급실에서는 아침이 되면 바로 수술해야하니 입원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확하고 상세한 설명도 없고, 의사의 태도도 너무나 불친절하고 남편도 우선 집으로 가길 원해서 그냥 퇴원하겠다고 하고 원무과에 들러 남편을 집에 데리고 왔다.


겨울 새벽녘 길바닥에서 1시간을 누워 일어나려고 애썼을 당신이, 아내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집 앞임에도 119에 신고했을 당신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쳤을지는 말 안해도 다 아는 것이었다. 게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술을 마셔댔으니 속도 온전치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 아이들은 새벽에 깨지 않았고, 남편을 데리고 와 침대에 재웠다. 너무 추워하기도 해서 이불도 꼭 덮어주고 보일러도 올려주었다. 남편과 이이들이 잠든 사이, 나는 다시 잠을 청하지 못했다.

혼자서 기도하며 말씀보며, 이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일까 돌아보고 묵상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나는 방학중 금요일은 출근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이런 사고를 친 날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금요일이라서 온전히 아이들도 남편도 케어할 수 있었다. 아이들 등원준비를 하여 차에 태우고, 응급처치 해놓은 팔을 부여잡고 곤히 자고 있는 남편도 깨워서 병원갈 준비를 해서 차에 태웠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동네에서 그래도 가장 용하다는 정형외과를 갔다. 상완골 골절, 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고 수술도 붓기가 빠진 뒤에 해야 한단다. 수술 후 1주일간 입원, 1달간 깁스 및 보조대 착용이라는 입원과 치료 일정이 정했다. 술 마시고 잘못 넘어진 대가가 생각보다 컸다.


남편은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 없어했다. 그냥 넘어졌는데, 어떻게 팔이 부러졌으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팔을 못쓴단 말인가. 수술도 3시간은 걸리는 가벼운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술 마셔도 집에는 잘 찾아오고 집에 와서 자신이 입었던 옷은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어떨 때는 집까지 다 정리해놓았던 사람이라 늘 술을 마셔도 괜찮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너지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이게 정말 꿈이 아님을, 현실임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꿈이 아니었어...." 라고 말하면서.


나는 일절 남편의 그 어떤 행동도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내게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그 정도 신뢰밖에 안되느냐는 아쉬운 말 한마디만 붙였다. 그러면서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는 것이고 더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타일러주었다. 마음속에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말의 한심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죽지 않아서 여전히 우리 곁에 나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진료받고 사진찍고 하는 동안에도 남편은 전혀 술이 깨있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니...? 수술과 입원을 위한 각종 검사를 하는 중에도 '자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여전히 술에 취해 팔이 부러진 남편을 데리고 나는 병원 이곳 저곳을 다녔고 다 마치고 점심을 사 먹이고 집에 가서 재웠다.


그러고 나니 곧 아이들 하원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하원 이후 일정을 소화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야 남편은 조금 정신이 든것 같았다.


이때부터 우리집엔 다 큰 아들이 하나 생겼다. 옷 입기, 벗기, 씻기 등 남편은 나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수술 일정이라도 빠르게 잡혔으면 좋았겠지만, 몇일 뒤에 있을 아이 졸업식에 참여하고 나서 입원해야 할 것 같아 수술 일정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큰 아이 어린이집 졸업식이라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졸업식 당일도 정말 나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침밥 해서 셋을 먹이고 졸업식 주인공 아이의 머리를 만져주고 한복을 맵시있게 입히고 둘째는 어르고 달래서 같이 준비하고 남편도 머리 감겨주고 양말과 옷을 입혀주며 나도 화장하고 옷입는데 모든 시간이 다 지나갔다. 거기에 아이 할머니까지 픽업해서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너무나 분주하고 고생스러웠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순조로웠다. 남편은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했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도와줄 수 없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임에 고개를 숙였다. 이런 자세 몇일 안 가겠지 .. 생각했지만, 괜찮다고 격려해주었다.


졸업식 마치고 다음날 남편은 입원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수술하고 일주일동안 병원밖을 나오지 못했다. 나는 거의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병문안을 갔고 늘 간식거리를 사들고 아프신 남편을 찾아뵈었다. 수술하고 나니 팔을 움직일 때 찾아오던 고통은 사라진 듯 했다. 한결 편안해 보였고, 나름 자신은 '새사람'이 될 것이고, 되었다며 자부했다. 당분간 술은 안 마시겠다고 했다. '당분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달라진 게 어딘가 싶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일은, 남편은 수술실에서 나올 때 베드에 누워서 마취가 덜 깬 상태로 나오지 않을까 했단다. 그러면 나를 보고서 '여보,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취도 다 깨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멀쩡한 상태로 나를 만나서 그렇게 말할 수 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랑한다고 해봐~ 했더니, 말을 안한다. 나는 이리도 무뚝뚝한 남편을 뭐가 좋다고 결혼까지 했을까 싶지만, 집에 가려 돌아서는 길에 '사랑해'라고 해준다.


남편이 퇴원하고 집에 왔다.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도 했다. 그랬더니 이제 내가 아프다. 감기 몸살이 심하게 왔다. 잠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몸상태. 온 몸 구석구석이 다 아프고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듯이 손에 무얼 쥘 수도 없다. 일요일 저녁 그렇게 아프고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이제 겨우 계약직 1년차인 내겐 연차가 너무 소중한데, 내가 아프다고 연차를 쓰기가 너무 아까웠다. 아이들 일정에 맞춰 연차를 쓸일이 많다보니, 나의 사정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출근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하고 차에 앉았는데, 갈 수 있을까? 싶었다. 겨우겨우 운전해서 왔는데, 또 앉아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어떻게 버티고 버텨 점심을 먹고 한숨 잤다. 그랬더니 조금 괜찮아졌다.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이 자신의 영양제도 나눠주고 따뜻한 티도 사주며 나를 챙겨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육아기 단축근무중이라 4시에 퇴근하는데, 잘 버텨보자.

집에가서 또 아이들을 챙기고 사랑해주고 내 사랑 남편도 챙겨줘야지.

엄마, 아내는 아프기도 힘들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힘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느끼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