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탐험과 여행 사이
옐로스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진이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옐로스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일 것이다. 나는 옐로스톤에 가면 무조건 이곳부터 방문해 보길 원했다. 남편은 이곳을 보고 나면 다른 곳들이 시시해질까 봐 우려했지만, 나는 이곳을 보기 위해 옐로스톤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이곳을 보기 위해 단 1분 1초도 못 기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옐로스톤 계획의 첫 번째로 이곳부터 방문했다.
우선 내가 놀란 건 이 스프링의 크기였다. 호수를 거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 깨닫고 나서 이 호수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의 직경은 무려 61m~100m이며 깊이는 약 36미터라고 한다. 일반적인 축구장의 크기가 64m-100m 정도인 것을 감안해 보면 이곳의 크기는 축구장과 거의 맞먹는 크기인 것이다. 이뿐 아니라 깊이 또한 무려 10층 건물의 높이만큼이나 깊은 것이다.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이란 이름은 1871년 처음 명명됐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선명하고 영롱한 색들로 이뤄진 고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뷰포인트
우리는 먼저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Grand Prismatic Spring Overlook"로 향했다. 트레일을 따라 30분 정도 걷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전망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면 위 사진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모두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공간을 잘 내주지 않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오랜동안 이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명당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인증샷을 남기는 게 끝나면 뒤에서 비키라는 사람들의 눈초리와 헛기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을 바라보는 순간 "헉'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색에 나는 감탄했다. 어떻게 저런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트레일을 내려와 곧장 이 풍경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 붐빈다고 했다. 오전 9시쯤 이곳을 방문했는데도 벌써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길을 따라 끝도 없이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포기한 채 우린 길가에 차를 주차한 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유황냄새와 뜨거운 열기. 정말 지구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였다. 스프링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이뤄진 작은 강이 보였다. 그 물이 흘러나오는 암벽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뜨거운 물이 상대적으로 시원한 강을 만나며 만들어지는 수증기를 보았다. 스프링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나무로 된 데크만 놓여있을 뿐 울타리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한 아버지가 2-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두 팔을 잡고 물 위로 휘 던지는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아버지는 이 장난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곳
옐로스톤은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그 주변의 온천과 간헐천은 산성 혹은 알칼리성을 띠며 물은 항상 뜨겁게 끓고 있다. 이 말은 즉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6년 6월, 23살의 Colin Scott이라는 남성은 노리스 간헐천 분지(Norris Geyser Basin)에 빠졌고 뜨겁고, 산성화 된 물로 인해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국립공원 관리청의 발표에 따르면 그는 금지 구역을 하이킹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고에서 유독 끔찍했던 점은 사고를 당한 지 하루도 안돼 그의 시신이 완전히 용해돼 사라졌다는 점이다. 참고로 옐로스톤의 스프링과 간헐천의 수온은 일반적으로 약 93도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옐로스톤 곳곳에는 방문객들에게 산책로에 머물도록 안내하는 경고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젊은 청년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금지구역을 하이킹했고 사고로 이 뜨거운 온천에서 빠졌지만 끝내 살아 나오지 못했다. 이처럼 옐로스톤에서 발을 헛디뎌 온천물에 빠지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 옐로스톤 관광지를 돌아다닐 땐 주의가 필요하다. 또, 경고판을 무시한 채 제 멋해도 행동했다간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무지개 색을 띠는 이유
하지만 옐로스톤은 그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보고 싶은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지구가 살아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 맡으며 느낄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옐로스톤의 스프링(온천)은 지면의 균열을 통해 끊임없이 물이 공급되고 흘러나오며 만들어지는데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의 각기 다른 물 색깔의 차이는 수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 말은 즉, 계절이 스프링의 물 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철에 더 짙은 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한 여름에 옐로스톤을 여행한 덕분에 나는 더 맑고 청아한 스프링의 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온도차이로 수증기가 더 많이 보여 시야를 방해한다는 말이 있어 걱정을 하며 갔지만 다행히 이곳의 풍경을 눈에 담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에 따라 햇빛의 각도에 따라 물의 색이 다르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 나는 이곳을 다시 찾았다. 넘어가는 햇빛을 받은 이곳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전에 보았던 모습이 조금 더 선경 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오후에 간다면 사람들이 오전만큼 붐비지 않아 조금 더 조용히,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이유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의 중심부는 섭씨 87도라고 한다. 가장자리로 가면서 물의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는데 이러한 온도의 차이는 아름다운 스프링의 색을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온도에 따라 이곳에 사는 박테리아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스프링의 색을 만들어내는 건 이 물에 사는 박테리아 덕분이다.
옐로스톤과 같은 열수지형(Hydrothermal)은 언뜻 보기엔 생명체가 살기에 극한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뜨겁고, pH농도 또한 생명체가 살기엔 부적합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는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종류의 호열성 박테리아(thermophilic bacteria)가 살고 있다. 참고로 'thermo'는 열을 뜻하며 'phile'은 좋아한다는 걸 뜻한다. 즉, 열을 좋아하는 박테이라란 뜻이다. 호열성 박테리아는 보통 50-60도 이상에서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옐로스톤의 이 아름다운 색감은 바로 이 박테리아로부터 나온다.
옐로스톤의 온천들은 뜨거워진 물이 표면에서 식으면서 다시 가라앉고 지구 내부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워진 물은 다시 상승하며 순환한다. 이러한 순환은 옐로스톤 내부의 열을 식혀주어 화산이 분화하는 데 필요한 온도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 과정에서 스프링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의 온도가 낮아지고 덕분에 그곳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가 바뀐다. 덕분에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에는 주황색, 노란색, 녹색 등의 띠가 푸른 호수를 둘러싸게 됐고 지금과 같은 멋진 광경을 만들 수 있었다.
가장 뜨거운, 푸른빛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을 바라보았을 때 단연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푸른 빛깔의 물이었다. 색이 주는 느낌과 다르게 사실 스프링 중심부의 이 파란 부분은 스프링에서 가장 뜨거운 부분이라고 한다. 거의 끓는점에 가까운 온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을 좋아하는 호열성 박테리아라고 하더라도 생명을 유지하기란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극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박테리아는 유기물이 아닌 수소가스나 다른 무기화학물질을 원료로 하는 생명체뿐일 것이라고 한다. 즉, 유기물이 존재하기 힘든 곳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이 푸른빛은 박테리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영향으로부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빛의 산란 덕분이다. 스프링 중심부의 맑고 푸른색의 물은 오염물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한 빛의 간섭현상이 거의 없다. 이에 빛이 물을 통과하면서 빨간색 파장은 빠르게 흡수되고 파란색 파장은 물속 깊은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 물분자는 파란색 파장을 산란시켜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게 한다. 덕분에 우리 눈엔 물이 영롱한 파란빛으로 보이게 된다.
파스텔 빛깔의 노란색
파란색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첫 번째 띠는 노란색이다. 마치 파스텔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이 레몬빛깔 부분의 물 온도는 대략 74도 정도라고 한다. 여전히 온도가 높기 때문에 시아노박테리아의 한 종류인 시네코코커스(Synechococcus)를 제외하곤 살아남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한다. 시네코코커스는 단세포 생물로 대부분 광합성을 통해 물이나 황화수소를 광분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양 환경에 넓게 분포해있다고 한다.
시네코코커스의 색은 광합성 색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색소에는 주로 엽록소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있다. 엽록소는 시아노박테리아, 조류(algae), 식물과 같은 유기체가 빛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데 사용되는 분자로 녹색, 노란색, 보라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카로티노이드는 광영양 박테리아(phototrophic bacteria)가 빛 에너지를 얻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분자로 노란색에서부터 빨간색, 주황색 등의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참고로 당근이 주황색을 띠고 호박이 노란색을 띠는 이유도 이 분자 덕분이다.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에서 시네코코커스는 일반적으로 녹색으로 보이는 엽록소 수치가 낮고 주황색이나 노란색으로 보이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색소 수치가 더 높다고 한다. 카로티노이드 색소의 사용은 시네코코커스를 직사광선으로부터 시네코코커스를 보호하기도 하는데 유해한 자외선을 흡수하고 광합성 과정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시네코코커스 덕분에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노란색 띠가 생겨났다.
조금은 어두운 오렌지색 빛깔
노란색 띠를 지나면 오렌지 빛의 띠가 나타난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물이 더 차갑게 식으며 더 많은 박테리아가 생존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난다. 덕분에 시네코코커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박테리아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곳의 수온은 약 65도이며 클로로박테라아(Chlorobacteria)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 박테리아는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도 번성할 수 있으며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이 영역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역시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통해 색을 얻는 덕분에 붉은색에서부터 노란색까지 약간은 다른 색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박테리아의 덕분에 이 영역은 약간 어두운 오렌지 빛을 낼 수 있고 그 영역도 노란띠보다는 넓어 보인다. 이 오렌지 띠의 질서 없는 방향성은 마치 태양의 홍염처럼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물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이 모양은 달라질 것이다. 역동적인,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붉은 벽돌 색깔의 마지막 띠
그랜드 프리즘 스프링의 마지막 띠는 붉은색으로 언뜻 보면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역은 약 55도이며 더 많은 박테리아가 생존하고 번성하게 할 수 있다. 탁한 오렌지였던 띠는 이 영역에서 적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오렌지띠 영역보다 더 차가워진 이 영역에는 아마 더 많은 종류의 박테리아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역동성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역동성 또한 볼 수 있는 옐로스톤의 그랜드 프리즘 스프링이었다. 죽기 전에 왜 꼭 가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장소였다. 커다란 스프링을 따라 걸으며 수증기의 따뜻함과 햇빛의 뜨거움, 유황냄새, 졸졸 흐르는 물의 소리까지 오감을 다 열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랜드 프리즘 스프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overlook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다고 하지만 나는 이 스프링이 여전히 지구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지구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스프링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훨씬 좋았다. 절대 나의 뇌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을 보았던 24년도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