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이식 후의 나날들
난자채취부터 이식까지 일련의 시험관 과정을 겪으며 매 단계에 집중하기 바빴다. 이식까지만 잘 되면 그 이후엔 한결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물론 이건 착각이었다. 이식 후 첫 피검사를 하는 날까지 매일이 피 말리는 조용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배가 조금만 아파도 착상통일까 하며 증상놀이하기 바빴고 최대한 몸을 무리하지 않기 위해 휴식했다.
또다시 호르몬제 지옥
이식 전까지만 맞으면 되는 줄 알았던 약과, 주사, 질정제는 이식 이후에도 함께했다. 8시간마다 복용해야 하는 에스트로겐 호르몬제인 '프로기노바'는 아침 7시, 오후 3시, 저녁 11시에 맞춰 복용해야 했다. 덕분에 강제로 11시까진 잠들지 못했다.
12시간마다 넣어야 하는 질정제인 '예나트론'은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제인데 자궁내막을 안정화해 임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하루 총 2번 이 약을 넣어야 했는데 도저히 맨 손으로 넣을 자신이 없었다. 질정제 주입 방법에 대해 찾다 보니 질정 주입기라는 게 있다는 걸 발견했다. 템포처럼 생겼는데 평소 템포도 잘 사용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템포보다는 수월하게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마저도 없었다면 얼마나 진땀을 빼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질정을 넣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밖에도 하루 한번 맞아야 하는 주사가 있었는데 프로게스테론 성분의 '프롤루텍스' 주사였다. 프롤루텍스 주사는 투여한 부위가 딱딱하게 부어오르는 통증 때문에 일명 '돌주사'라고 부르는데 다른 주사에 비해 유독 아프다. 주 성분이 기름이라 끈적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사를 맞고 거울을 보면 그 주변부만 하얗게 뭉쳐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주사를 맞고 몇 시간 후에 잘 풀어주지 않으면 한동안 땅땅하게 뭉쳐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주사를 맞을 땐 이걸 어떻게 몇 주 동안 맞을까 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내 요령을 점점 터득해 갔다.
가장 말랑거리는 뱃살 부위에 주사를 최대한 천천히 넣는 게 그나마 덜 아픈 방법이었다. 이 마저도 주사를 맞은 지 한 달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안 아픈 부위엔 더 이상 찌를 곳이 점점 줄어들어 주사 놓을 부위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하루는 오른쪽 배를 찌르다가 혈관을 잘못 건드렸는지 시퍼렇게 파란 멍이 크게 들어 멍이 빠지는 동안 오른쪽 배엔 주사를 놓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하루 일과표가 되어버린 이 스케줄은 어느새 내 일상이 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임신 10주 차가 될 때까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럴 때면 엄마 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억울한 마음이 삐쭉 솟아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연임신이었다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1차 피검사
이식 후 정확히 9일 후 드디어 1차 피검사의 날이 됐다. 지난 9일간 증상에 따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며 일희일비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생리통과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의 사르르 한 느낌의 배, 때론 콕콕 쑤시기도 당기기도 하는 배의 통증 때문이었다. 간헐적으로 갈색혈이 비추기도 했는데 이게 착상혈일지 아닐지 알 수 없었기에 초조하기도 긍정적인 사인으로 보여 안심되기도 했다. 몸의 변화를 잔뜩 주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누군가는 착상이 될 때 갑자기 복부를 훅 때리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통증을 두 번 정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증상놀이는 조용한 희망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오늘 피검사는 시어머니께서 같이 동행해 주셨다. 오랜만에 어머님과 데이트다. 남편이 일 때문에 먼저 미국으로 들어가고 나서 남편의 빈자리는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대신해주고 계신다. 시험관 과정에서 여자의 역할이 99%가 되는 듯한 느낌이라 혼자 하는 임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괜스레 우울해질 때가 있곤 한데 다행히 가족들 덕분에 잘 버티고 있다. 부부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임신인데,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병원에 가자마자 채혈을 하고 진료를 기다렸다. 채혈 결과가 바로 나오는 줄 알았으나 2시간 후 병원 어플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수치가 20만 넘으면 된다고 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어머님과 근처 카페에 가서 수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듣고 육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어플엔 피검사 결과가 업로드됐다. hCG 수치는 396 mlU/ml. 병원에서 이야기 한 수치를 훨씬 웃도는 수치에 일단은 안심한다. 임신이 확인되는 순간이 어플에 나와있는 수치를 보게 될 때라니. 내가 상상했던 임신의 확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일단은 기뻤다. 물론 이틀 후 검사에서 더블링에 성공해야 한다. 더블링이란 임신호르몬 수치(hCG)가 2-3일 간격으로 2배 이상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임신 테스트기
많은 사람들이 1차 피검사 때까지 참지 못하고 매직아이로 희미한 두줄을 확인하려 애쓰며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댄다고 한다. 시험관을 겪은 나의 지인은 나에게 피검사 확인 전까지 정신건강을 위해 임신테스트기를 하지 말 것을 조언한 바 있었다. 나도 너무 궁금했지만 내 성격을 너무 잘 아는 나로서는 스스로 희망 고문을 할 순 없었다.
1차 피검사를 확인한 날 나는 집으로 와서 드디어 첫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았다. 지난번 생리가 늦어져 샀던 임테기였지만 임테기를 산 그날 바로 생리를 시작했다. 임신하면 꼭 이 임테기를 써보리라 다짐했었다. 드디어 집구석에 놓여있던 임테기의 쓰임새가 생긴 거였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두 줄. 감격스러웠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임신한 게 실감 났다. 코로나 키트 이후로 두 줄을 보았던 건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보았다. '두 줄이 뜰 수 있는 거였구나' 이 순간만큼은 내가 상상했던 임신확인의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나는 새로운 임신테스트기를 사 와서 계속해서 시험해 봤다. 두 줄이 뜨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2차 피검사
이틀 후 2차 피검사의 날이었다. 채혈을 하고 진료를 보았다. 결과는 지난번과 똑같이 두 시간 뒤 병원 어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두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어플에 결과가 나타났다. hCG 수치는 무려 1114 mlU/mL 오늘은 수치가 800을 넘으면 된다고 했었다. 더블링에 성공했다는 건 착상이 잘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드디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일단 착상은 잘 되었구나. 제발 이대로 임신유지가 계속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이제는 매번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퀘스트를 깨야했기 때문이다. 다음 내원은 무려 10일 뒤. 그땐 첫 초음파를 보게 될 예정이고 착상이 정확한 위치에 잘 됐는지 확인하게 될 터였다. 이식 때 배아를 2개 넣었기 때문에 아기집이 하나일지 두개일지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피검사까지 9일간 기다리는 것도 죽을 맛이었는데 이젠 또 10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기다리다가 미칠 노릇이었다. 시험관 기간 동안 나는 고통에 익숙해지고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내의 시간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이식 이후의 시간이구나 알게 됐다.
아직 누군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긴 조심스러웠지만 시험관 특성상 알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매달, 매주 단계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는 일이기에, 내 옆에서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들은 이식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임신 사실을 말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임신극초기엔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남편과 항상 말하던 '조용한 희망'이 이제 진짜 '희망'이 됐다. 이 희망이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