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벚꽃을 즐기는 방법

행복에 대한 짧은 고찰

by 문 별

4월 9일.

이 날은 나의 생일이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나는 나의 생일을 정말 좋아한다.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이며 1년 중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이다. 내가 내 생일을 좋아하는 데는 나의 생일이어서도 그렇지만 그 숫자의 조합이 좋다. 4는 2x2의 숫자이고 9는 3x3의 숫자이다. 그리고 49는 7x7의 숫자이다. 4는 5가 아니어서 좋고 9는 10이 아니어서 좋고 49는 50이 아니어서 좋다. 왠지 이런 식의 숫자 조합이 부족한 듯 보이지만 완벽하다고 느껴진달까.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나의 생일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생일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이다. 길고 긴 겨울의 끝이 어디일까, 지겹고 혹독하게 겨울을 지내다가 정말 어느 순간 세상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변화하는 시점. 개나리가 필 때까지는 '그래 꽃이 피나보다, 이제 봄이 오나 보네' 하다 정말 한 순간에 세상은 하얗고 눈부시게 변해 버린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순간, 그 순간. 그렇게 환하고 멋진 날에 세상에 나왔으니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눈이 부시고 정신이 몽롱했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하는 듯이 이 시기가 되면 나의 몸에 있는 세포들이 반응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일 즈음에 나는 행복해진다. 기분이 들뜨고 설렘이 밀려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생일을 기준으로 나만의 벚꽃 시즌을 즐긴다. 벚꽃이 화창하게 피어 있는 일주일 동안 정처 없이 벚꽃을 보며 걷고 또 걷는다. 아쉽게도 아름다운 것은 일찍 사라져 버려 일주일을 바짝 즐기지 않으면 어느새 인가 지고 없어지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피는 꽃을 그리고 눈 내리듯 화려하게 지는 벚꽃을 지켜봐야 했다. 그것이 내가 내게 주는 아주 사치스럽고 멋진 생일 선물이었다.


22살 때인가. 빨간색 신발을 신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벚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덕수궁 근처 일대를 걷고 계속 걸었다. 화려한 빨간색 신발은 나를 멋진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라 믿었고 빨간 립스틱은 걷는 걸음, 걸음 한 걸음마다 나를 당당하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해 내 생일에는 엄청난 비가 하루 종일 내렸고 젊디 젊은 나는 우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벚꽃이 싫어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몇 시간의 벚꽃 산책을 강행하다 꼬박 3일을 앓아누웠었다. 비에 홀딱 젖은 나는 전혀 멋지지도 당당하지도 않았지만 행복했었다. 비 오는 날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는 벚꽃 내음이, 축축하게 젖은 달달한 공기가 가끔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나만의 애틋하고 간절한 취향을 알고 있는 어느 신의 덕분인지 요상하게도 다니던 직장들 근처가 모두 벚꽃 천지였다. 그중 오래 다녔던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유명한 윤중로의 벚꽃을 매년 지치지도 않고 여러 번 질릴 때까지 보곤 했다. 여의도에 있던 직장은 밤샘 작업이 많아 여러 날을 새벽에 깨어 있곤 했는데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눈꺼풀이 턱까지 내려올지 언정 벚꽃은 봐야겠다며 그 새벽에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그 길에 나섰다. 가로등에 비친 벚꽃은 하얀빛을 더욱 뿜어냈고 누구 하고도 공유하지 않고 윤중로의 그 많은 벚꽃을 온통 내가 차지했다. 정말 행복했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그 세계를 온전히 누리고 있는 것도 모두 축복 같았다. 행복은 참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가슴이 벅찰 일인가. 누군가의 막대한 노력이 없어도 이렇다 할 큼지막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가질 수 있는 게 행복이었다. 행복은 그렇게 쉽게 마음에 깃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간 나는 나만의 벚꽃 시즌을 즐기면서도 예전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해질 것이 당연할 것이라 여기고 찾아 나선 벚꽃 길이었는데 이전만큼 즐겁지도 설레지도 좋지도 않았다. 이상한 얘기지만 내가 나에게 행복을 강요하고 있는 듯했다. '넌 벚꽃을 좋아하잖아, 벚꽃 구경하면 행복해하잖아.'라면서 일을 나가듯, 해야 하는 숙제를 하듯 일주일 동안 매일을 이곳저곳 벚꽃을 보러 나섰다.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의 벚꽃 명소의 리스트를 하나하나 쳐 나가며 일말의 행복을 느껴보고자 노력했지만 나는 조금씩 지쳤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미도 퇴색되어 갔다.


심지어 올해 내 생일 4월 9일에 김포는 벚꽃이 피지도 않은 채 겨우 봉우리 져 있었다. 일주일 간 벚꽃을 보기 위해 생일 전 주에 일을 새벽까지 무리해서 끝마쳐 났었는데, 이 날 만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었는데,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고 행복은커녕 우울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어쩌면 행복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입버릇처럼 행복하자고 생일 초를 불며 비는 소원도 달을 보며 비는 기도도 하물며 돌멩이 탑에 돌을 얹으면서도 행복을 빌었는데 행복은 빈다고 해서 오는 것도 갖겠다고 욕심을 부려서 얻는 것도 아닌 것이었다.


올해는 벚꽃이 늦기도 늦었고 이상하게 피었다. 필만 하면 비가 퍼부었고 조금 폈다 싶을 때 바람이 불어대서 한꺼번에 확 아름드리 피지 않고 일부 피고 또 일부 피었다. 원래는 꽃이 확 피고 확 지고 나면 그다음 초록색 잎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꽃 사이사이 초록색 잎이 같이 보였다. 덜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벚꽃을 볼 시간이 다른 해에 비해 길었다. 찬란하게 피었다가 없어지는 아쉽고 애틋한 일주일 대신 이 시기의 벚꽃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가졌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고작 그래봐야 2~3주이긴 하지만. 그래서 의도치 않게 올해 나는 더 많이 걸었고 더 오래 벚꽃을 보았다.


이제 벚꽃은 거의 지고 없다. 나는 이제 다음 해의 벚꽃을 기다리고 있다. 습관처럼 봄에 나는 또 거리를 나설 것이다. 그렇지만 행복이 습관처럼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기대를 내려볼까 한다. 어느 날 고개를 문득 들었는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고 '와~깜짝이야' 할 수 있게.


너무 기다린 것은 더디 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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