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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Oct 16. 2023

[프롤로그] 연애 7년, 결혼 7년

그 어느 때에도 그는 내 옆에 있었다


연애 기간 7년 3개월, 결혼 기간 7년 4개월.

이제 막 결혼 기간이 연애 기간을 넘어섰다.


이 남자를 알고 지낸 지 15년이 되어간다.

돌아보면 그야말로 '다사다난' 했다.

내 나이 26살, 그의 나의 27살에 만난 우리는 지지리도 가난했다.

서로 밥 값을, 데이트 비용을 걱정하며 만남을 이어가면서도

끝내는 헤어지지 못했다.


싸우기도 얼마나 많이 싸우고 헤어지기도 얼마나 많이 헤어졌는지

내가 당사자인데도 이번 헤어짐이 정말 헤어짐인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큰 대로변에서 서로에게 악을 쓰며 서로의 막장을 보여주고 헤어진 적도 있고

밥 먹다가 대판 싸워서 그 길로 나와 서로 반대편 길로 걸어가며 헤어진 적도 있다.

(그때 먹은 게 곱창이었는데 헤어지며 돌아서는 길에 그는 다시는 곱창을 안 먹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진짜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 게

어떻게 또다시 만나고 있었다.

한 번은 그가 또 한 번은 내가, 그렇게 그때그때 서로를 잡았던 것 같다.


한 번은 헤어지고 한 3일째 지난 어느 날이었나

집 앞에 복숭아 한 박스와 편지가 놓여있었다.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변명도 애절한 사과도 없었다.

그저 생각해 보니 연애 때 내가 진짜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준 적이 없어서 그게 마음에 걸렸다는 그의 마음과

복숭아 한 박스를 다 먹는 동안 헤어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 동생은 그때 그 복숭아가 인생 최고의 복숭아였다고 말한 정도로 실하고 달콤한 복숭아였다.

나는 복숭아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사람과 헤어지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연애 때 좋았고 행복한 기억도 많다.

돈도 없고 뚜벅이면서 우리는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민둥산 정상에 있는 갈대를 보겠다고 올라가고 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기차시간 놓치면 안 된다고

길도 아닌 곳으로 그야말로 나를 수직 상승시키며 산을 기어올라간 것도 기억나고

깜깜한 한적한 시골길을 산책하면서 서로의 애정하는 음악을 알려주며 번갈아 들은 것도 생각이 난다.

남해의 수국이 쫙 핀 길가를 한 없이 걸어간 기억도 나한테는 소중한 추억이다.

배낭 매고 처음 간 일본에서 어떻게 온 해외여행인데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경험할 건 다 경험해야 한다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강행군으로 여행을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그와의 추억은 끝도 없다.

곳곳에, 도처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널려있다.


그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기억들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그와 꽉 차게 만들어 놓은 나의 반짝이는 시절을

어느 헤어진 남자와의 추억 따위로 전락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결혼해서 다행인 게 그런 기억들이, 애틋한 추억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좋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달랐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육아는 인생에 닥친 최고의 고난이었다.


연애 때는 신경도 안 쓴 그의 사소한 습관이

결혼 생활에서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정리를 하지 않는 그와는 달리

나는 모든 물건이 제 자리에 말끔하게 있어야 한다.

어지르는 그와 치우는 나의 간격은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고

나의 불만이 극에 달한 만큼 그의 스트레스도 한계치에 다다랐다.

'아 이렇게 사소한 걸로 싸운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티끌만큼 가벼운 문제로 태산만큼 큰 싸움을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서로의 취향과 습관, 가치관과 기준점이 다른 것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아이는 태어났고

그렇게 우리의 모든 정신의 집중과 노동력을 서로가 아닌 아이를 향하게 되었다.

아이 표정, 먹는 거, 크는 거 등등 온통 아이에 집중하다 보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사는지 도통 쳐다보지를 못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기간은 말해 뭐 해, 한 5년은 내 눈길이 그에게 머문 적이 얼마나 있었나)


둘째가 세 살이 되었다.

이제 '내가 내가' 하며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내가 한 발 물러날 때이다.

그렇게 아이한테 조금 떨어져 주위를 둘러보니 그가 아직도 내 옆에 있다.


문득 깨달았다.

그가 계속 내 옆에 있었다.

내가 그에게 눈길을 거두어 신경을 못 쓸 때에도

그는 나의 옆에 있었구나.

그래서 배우자를 동반자라고 하는 건가?

'동반자'라는 단어의 뜻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를 오랜만에 쳐다본다.

'잘 있었나? 나의 남편!'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새롭게 그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쓴 글들이다.

그를 한 남자로, 한 사람으로 다시 보며

내가 이 남자를, 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기록해두려고 한다.


앞으로 우리의 남은 여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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