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라고 한껏 집중한 그의 모습이 웃긴다.
핸드폰 필름이 너덜너덜해서 거의 1/3이 먼지가 묻어있고 너덜한대도
그는 그걸 몇 달이고 그냥 썼다.
바꿔야겠다고 말하고 나서도 한참을 그냥 썼다.
그리고 내가 필름을 직접 인터넷에 주문하고 배달이 오니까 그제야
필름을 바꿔보겠다고 식탁에 앉았다.
비장하게
필름을 떼어내고
먼지를 한 톨 없이 닦아 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필름을 붙이는 데
그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나왔다.
저런데 몇 달이나 그냥 떼어져 너덜거리는 필름을 붙이고 지냈다니
그것도 지금 이 순간은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더니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어쩌면 본인도 그런 자신이 조금은 웃기고 머쓱했나 보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의 저런 점을 사랑한다고.
그는 무던하다. 나는 단숨에 짜증 내고 화내고 걱정하고 호들갑 떨 일을
그는 그저 무던하고 태평하다.
이러다가 바꾸겠지 뭐.
그런 마음의 상태.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마음.
나는 매사가 즉각적이고 바쁘고 속전속결 이어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는 불편하고 낯설고 싫은 그런 상황도 그저 묵묵하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겠어. 그도 싫기도 하고 불편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당황도 하고 다 하지.
그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그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태평하고 무던한 그의 태도를 모두 무관심으로 열정이 부족하다고 치부하고 대충 봤었다.
그러다 우리가 안 지 10년이 지나고
같이 살다 보니
그리고 내가 나이도 먹어보니
그도 다시 보인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나는 그의 이런 점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실로
결혼생활 동안
나는 그의 태평하고 온화하고 무던한 성격 덕에
마음에 안정을 찾고는 했다.
크게 싸우지 않고 결혼 생활을 잘 꾸리고 있는 것도
그의 그런 성격 덕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참 답답하고
핀트가 맞지 않고
속도가 같지 않다고
불평했던 것들이
이제는 좋아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