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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8. 2023
아들 둘에게 사랑받는 남자
그는 딸을 원했다.
그의 성향상 딸과 더 잘 지낼 것 같긴 했다.
섬세한 편이고 와일드하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이 아니니
아들과 몸싸움하며 왁자지껄 지내는 모습보다
딸이랑 얘기하며 웃으며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여자들의 놀이를 통해
신기해하고 재밌어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딸을 원했다.
나는 여동생이 있었고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그야말로 여자들 속이 편한 사람이었으니까.
남자들과 같이 지내는 일상이 어떤 것인지 경험도 없었고 친척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아
남자 아이, 남자 어린이, 남자 학생에 대한 정보나 경험치가 진짜 전무하여
남자아이를 임신했다고 알았을 때는
'아하~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지?'' 하는 심정으로 임신 내내 갑갑했었다.
그런 우리가 남자 아이 둘을 낳았다.
어리석게도 첫째 아이가 남자 아이니 둘째는 여자 아이가 나오겠지 하며
아무 근거 없이 우리 둘은 둘째가 딸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그는 둘째가 딸이라는 것에 전재산을 걸만큼 확신한다며 가족들과의 술자리에서 호언장담하였다.
그런데 둘째도 남자아이였다. 세상에!
둘째가 남자아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실망도 대실망이긴 했지만
나는 그가 걱정됐다.
그렇게 딸을 갖고 싶어 했는데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할까
원하지도 않은 아들을 둘씩이나 키우고 싶을까
여자 아이를 보는 눈길과 다르겠지, 덜 사랑하지 않을까
그런 요상한 생각들을 나는 끊임없이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그는 '어쩔 수 없지 모' 하는 말 한마디로
그의 실망에 찬 마음을 대신하고는 별 말이 없었다.
둘만으로도 벅찬 우리는 딸이 갖고 싶어도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었고
그는 딸을 못 가진 미련도 후회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아들 둘로 만족했다.
나는 한동안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고
어쩌다 딸 한 명을 못 낳았을까
늙어서 목욕탕 데려갈 딸도 없고
저 아들 둘 키워서 다 다른 여자 줄텐데 하며
괜한 마음으로 나 혼자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그한테는
"내가 중전이었어봐. 왕세자를 둘이나 낳은 여자고 여보한테 귀한 아들을 둘이나 안겨준 거지
조선시대였음 복 터진 거야" 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위세를 떨었다.
다행히 우리 두 아들은 모두 애교가 많고 말도 많다.
커서 또 어떻게 성격이 변할지 장담 못하지만 지금은 둘 다 안기고 뽀뽀하며
얼마나 사랑스럽게 구는지 딸이랑 비교해도 손색없다 생각한다. (실은 비교 대상도 없지만ㅠ)
키우면서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은 계속 옅어져 간다.
그가 퇴근하고 문을 여는 순간
두 아들들은 총알같이 튀어나가 그를 맞이한다.
서로 먼저 안겠다며 문 앞에서 아빠 쟁탈기가 매일같이 열린다.
아이들은 평일에 일어나면
출근하고 없는 아빠를 꼭 찾고 "아빠 회사 갔어?"하고 묻는다.
저녁이면 아빠는 언제 오는지 꼭 묻는다.
확실히 아빠가 몸으로 놀아줘서 그런지 아빠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
7살인 첫째는 주말이면 아빠랑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같이 자전거도 타고 인라인도 타고 산에도 가고 남자들의 우정을 쌓는다.
3살인 둘째는 자기 전 아빠랑 책 읽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