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마차 대신 유모차와 함께한 영국 생활
20년 전 결혼과 동시에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영국은 동화책에서 나온 듯한 곳이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세련된 차 문화, 신사의 나라다운 예절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근사한 영국에서 미래를 계획하며 즐겁게 누리며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즐기던 어느날, 평소에 즐겨 먹고 좋아하던 음식을 먹는데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역겨운 냄새와 헛구역질..
설마...
계획에도 없던 임신은 영국에서의 모든 계획을 뒤흔들어 놓았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한국의 가족들, 특히 친정엄마의 도움은 털끝만큼도 기대할 수 없었다. 홀로 시작된 육아는 하루도 쉴 틈 없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남편은 영국에서의 기반을 다지느라 일에 매진했고, 나는 쉼 없는 육아에 지쳐갔다.
제대로 된 수면도, 식사도, 화장실 가는 것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아달라 보채고, 장난감은 집 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읽어달라고 들고 오는 책들을 보면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영국에서 동화같은 삶, 신데렐라와 같은 꿈을 꾸었는데 현실은 두 아이들이 매달려 있는 고달픈 삶이었다.
힘들다고 울거나 지쳐서 쓰러질 시간도 없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였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갔다. 나만의 공간을 갈망했지만, 하루 일과는 온통 아이들과의 밀착된 시간뿐이었다. 그저 아이들이 빨리 자라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영국 생활 초기라 편하게 이야기할 친구도 투정을 받아줄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만을 온전히 바라보며 지내야 하는 영국은 매정한 바람만 부는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다.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건물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느껴지던 낭만도 사라지고 현실은 눈 앞에는 칭얼대고 붙어다니는 아이들 둘이 나만을 쳐다 보고 있었다.
낯선 땅에 아는 이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심하게 외로웠고 힘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없어질거 같기도 하고 미쳐 버릴것만 같았다.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였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는 듯 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나의 일과를 둘러보아도 모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밀착 같은 시간이기에 감히 엄두를 못 냈다.
그저 아이들이 쑥쑥 자라나서 어깨에 두 날개를 달고 날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찾은 숨구멍이 바로 새벽이었다.
잠이 부족했지만, 과감하게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
꼭두새벽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 그 짧은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아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속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은 내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왕자님을 만났지만, 나는 새벽이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났다. 유모차 대신 호박마차를 꿈꾸었던 나의 계획은 무너졌을지 모르지만,그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려 애썼다.
영국의 새벽은 아이들이 다 자란 오늘도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만의 새로운 동화를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