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침을 먹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어릴 적, 나는 오빠와 함께 자랐지만, 사실 거의 혼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오빠는 늘 병원에서 지내야 했고, 나는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이 그저 자연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중간고사,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복이 한 봉지와 김밥 한 줄을 사 들고 집으로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 있고 텔레비전 앞에 상을 놓고 앉는다. 누구의 방해 없이 보며 리모콘을 한 손에 독차지 하며 떡복이 국물에 김밥을 적셔 한입에 넣었던 순간, 소확행의 기쁨을 느껴던 시절이 삼삼하다.
오빠가 있었던 시절, 모든 반찬과 온 가족의 집중은 막내인 내가 아니라 아픈 오빠였기에 눈치것 알아서 잘 먹어야 했다. 오빠만 챙기는 엄마에게 서운함이 막 차오르려고 할 때 쯤 갑작스럽게 오빠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 이후 엄마의 젓가락 반찬은 내 밥 위로 올려지기 시작했다. 구운 고기반찬도 나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고, 식단도 나의 입맛에 맞춰서 차려지기 시작했다. 오빠가 더 이상 집에 없다는 현실, 그 부재로 인해 식탁을 독차지하는 혜택을 누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먹먹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다시 내 식탁의 자리는 한가운데가 아닌 모서리로 밀려났다. 친정 엄마가 항상 모서리에 앉으면 미움을 받는다며 나를 챙겨주지 못해도 모서리에는 안 앉혔는데 미움 받는 자리가 시집 와서 내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반찬을 겨우 손이 닿는 만큼만 먹으며 밥을 먹어야 했다.
반찬들은 늘 중앙에 앉은 시어머님과 남편, 아이들 쪽으로 향했고, 나는 겨우 눈앞의 반찬만 조용히 집어먹었다.
내 집의 식탁도 아닌 것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먹고 싶은 반찬에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누가 제지하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를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식사 중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요청들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면 밥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한 동안 그런 식탁을 대하다가 참다못해 시어른들에게 선언을 하게 되었다.
새벽 기도를 핑계 삼아 혼자서 조용히 밥을 먹기로 선언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면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밥 한 끼는 조금 더 편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만의 새벽밥 시간이 시작되었다.
새벽 시간은 내게 참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런 방해없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음식을 음미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시험이 끝나고 떡복이와 김밥 봉지를 흔들며 텔레비전 앞에서 먹었던 자유함을 이제는 새벽 시간 나만의 식탁에서 노트북과 책을 나의 즐거움으로 삼아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홀로 앉아 나만의 속도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하루의 작은 행복이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