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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철들게 하는 것

애증이 담긴 청소 이야기

by 런브


청소와 나는 애증의 관계다.



계획을 세울 때 청소는 항상 마지막에 넣는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룬다는 의미이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는 나에게는 힘든 노동이고, 시간을 알뜰히 보내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청소이다.

다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청소하는 데 내 노동과 시간을 쓰는 것은 탐탁지 않다.

정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남의 손을 빌려 청소를 맡기는 게 나의 꿈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주부"라는 이름을 떼어낼 수 없다. 주부와 함께 따라오는 책임감인 집안일과 청소는 늘 나를 따라온다. 어느 날은 청소를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어서 ‘어, 이거 할 만하네~’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날은 너무 하기 싫어서 ‘정말 못 해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매일 청소는 꿈도 꾸지 못하고, 기본적인 것만 대충 하는 편이다. 빨래와 밥은 먹고 입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앞세워 해야 하지만 청소는 정말 가끔 하는 일이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넘실되며 나뒹구는 게 보이고, 거실을 걸을 때 발에 무언가 밟히는 느낌이 오면, 결국 미룬 끝에 청소를 시작하게 된다. 그럴때면 "그래도 깔끔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설득하며 걸레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닦아댄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방과 화장실을 오간다.



아이들 방에 먼지를 쓸어 담고,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에 쌓인 물때와 온갖 더러움이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며 미묘한 희열을 느낀다. ‘그래, 나도 이렇게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내심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빨래도 깔끔하게 개어서 한쪽에 놓는다. 빨래를 개는 건 앉아서 쉽게 할 수 있지만, 각자의 서랍에 넣는 일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이 영국식 하우스여서 2층과 3층을 오가는 일이 힘들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먹은 날은 운동 삼아 오르락내리락 하며 열심히 뛰어다닌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마음속 먼지까지 쓸어낸 듯 후련해진다. 마치 여름방학 내내 미뤄두었던 숙제들을 한꺼번에 해치운 것처럼 상쾌한 해방감이 온몸을 감싼다. 그 순간만큼은 '앞으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청소해야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칭찬하며 작은 성취감에 한번 씨익~ 미소를 짓는다.


물론 서랍 속 잡동사니들, 냉장고 구석의 오래된 반찬통들, 계절이 바뀌어도 정리하지 못한 옷장도 여전히 나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것들의 존재를 슬그머니 외면한 채, 조용히 문을 닫는다. 대신 먼지 없이 반짝이는 거실 바닥과 물때 하나 없이 깨끗한 욕실, 정돈된 침실을 보며 작은 성취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집 안 구석구석이 깨끗해지니 복잡했던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니 답답했던 생각까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만 같다. 이렇게 공간이 깨끗해지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에너지가 샘솟는다.


하지만 이런 뿌듯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는 여전히 내 삶의 우선순위 끝자락에 머문다. 깨끗한 공간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을 잘 알면서도, 청소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은 늘 힘겹기만 하다. 이렇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면모를, 나는 이 애증 가득한 청소를 통해 매번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것들은 결코 쉽지 않은 법. 청소라는 일상의 작은 도전을 통해 조금씩 더 성숙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청소는 힘들고 버거운 숙제이지만, 이런 고단한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청소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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